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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Sep 03. 2023

열린 결말을 싫어하는 이유

모호함과 확실함의 선택 사이에서

책이나 영화를 보면 소위 열린 결말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종종 있다. 독자, 관객들의 상상에 영역에 맡긴다는 의미에서 혹은 다양한 해석을 나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러나 나는 열린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호함에서 오는 그 찜찜함이 전혀 반갑지 않고 오히려 마지막까지 괜히 읽었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열린 결말을 쓰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독자들이나 관객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 이런 방향으로 닫힌 결말을 쓴다면 후폭풍이 있을 것 같으니깐 모호함으로 위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 아닌 의심을 해본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비겁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자신 있게 소신 있게 결말을 이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훨씬 더 극혐이다. 명확하지 않은 관계들. 모호함이 섞여 있는 그런 관계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도 후퇴하지도 못한다. 썸이라는 이상한 관계 속에서 어느 것에 속한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그런 관계들이 싫다. 


따지고 보면 나는 모든 것에서 확실히 땅땅 결정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문제가 생기면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지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와 문제가 있다면 오해를 풀던지 아님 손절을 하던지 결정을 내야 직성이 풀린다. 모호함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보면 항상 뭐든지 딱딱 떨어지는 법이 없고 때로는 이상한 경계가 이어지면서 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고. 때로는 모호함과 확실함이 한 끗 차이일 때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모호함으로 원치 않은 진실을 알 수 없다'와 '확실함으로 원치 않은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다. 섞연치 않는 상황 속에서 단지 받을 상처가 두려워 모른 척하는 것은 또 다른 비겁함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또 하나의 원치 않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뼈 아프고 쓰리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결정할 수 있었다. 때로는 그게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느껴지지만 그래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도 그랬다. 몰랐으면 좋았을... 이 아니라 알게 돼서 다행이다. 


모호함으로 점철된 상황에서는 상처는 받지 않을지라도 평생을 그 모호함과 경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나에게는 이것이 형벌과도 같다. 


삶은 이렇듯 끝없이 이어지는 모호함과의 싸움일지도 모르겠다. 끝끝내 나는 그 모호함과의 대치 속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이를 좀 더 먹게 되면 그 자체로 인정하게 되려나. 아무튼 지금은 열린 결말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모호함은 싫다. 모호함이여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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