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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카 Jan 31. 2022

최선

#시가 싫은 당신에게 #운문 에세이


최선


최선을 다했냐는 물음에는

언제나 대답보다 고민이 앞선다


다하지 않았다 하면

다하지 않아서 잘못인 것이고

다했다고 하면

그 정도가 내 최선이 되어버린다



2022.01.30


어릴 적 시험을 망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항상 나에게 물었다.


"최선을 다했어?"


갑자기 들어오는 질문에, 초등학생 때까지는 "아니."라고 대답하곤 했다. 엄마의 표정과 말투로 보아, 왠지 최선을 다했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중학생 때, 시험 성적이 나온 어느 날, 성적표를 본 엄마는 똑같이 나에게 물었다.


"최선을 다했어?"


그 때의 나는, 중학교 때는 대부분이 그렇듯, 매사가 예민하고 자존감도 낮고 나에게 들어오는 모든 공격은 반사적으로 죄다 되받아치는 그런 시기였다. 15살의 내게 엄마의 질문은 그날따라 유독 아프게 들렸다. 울컥한 나는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르게 말했다.


"응, 난 이번에 진짜 최선을 다했어. 진짜 열심히 했다고!"


울컥해서 짜증 난 투로 말했기 때문에 혹시나 스매시가 날아오진 않을까 살짝 두렵긴 했지만, 내심 나는 엄마가 '그렇구나, 최선을 다했다니 대견하네. 되게 아쉽겠다. 괜찮아,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 알겠어, 고생했다.' 정도의 말은 기대했던 것 같다.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그럼 그게 네 최선인가 보네."


머리를 돌로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눈에는 알 수 없는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밖으로 흐를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히 들키진 않았다. 만약 들켰다면 뭘 잘했다고 우냐는 말까지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그날의 충격이 워낙 커서, 나는 그 뒤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물어도 답이 없으니 엄마도 언젠가부터 더 이상 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절대로 그 질문을 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했냐는 말은 남이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본인이 본인에게만 물을 수 있는 질문인 것이다.


매년 수능이나 설날이 되면 그때의 기억과 함께 그 질문이 생각난다. 수능을 준비하면서는 하도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기 때문에 그렇다. 수능의 결과는 몇 달 뒤 있을 설날에 내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설날에도 생각이 난다. 설을 맞아, 모든 수험생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정말 수고했다고,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 엄마는 그저 문장이 좀 거친 부산 사람일 뿐, 좋은 분이시다. 사랑해요 엄마. 그래도 그땐 엄마가 잘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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