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평범한(?) 40세 생일잔치
우리 새언니 생일잔치에 같이 갈래?
캘리포니아에서 잊지 못할 경험은 아무래도 지금껏 한국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경험한 순간들이다. 룸메이트 메릴의 새언니 생일 초대는 생각지도 못한 서프라이즈였다. 생일이면 주로 친한 친구들끼리 만나 간단히 식사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선 하우스 파티를 여는데, 가족들과 친구들이 함께 모이는 뭔가 어색한 조합으로 모여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 미국 스타일의 파티를 느낄 수 있었다.
메릴의 오빠 가족은 캘리포니아의 샌클레멘토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내가 사는 얼바인과는 또 다른 느낌의, 그야말로 상상 속 캘리포니아의 모습을 지닌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집으로 가기 위해선 미리 방문자 등록을 해야 하고, 영화에서나 볼 법만 커다란 문을 시큐리티가 열어 주어야 그들이 사는 동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언덕 위 이층 집에 도착했다.
집 안에는 많은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고, 밖엔 30대 후반-40대로 보이는 어른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메릴과 폴의 한 집에 사는 룸메이트 자격으로 그곳에 가 (누군지 모르겠는)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생일의 주인공을 만나 인사를 하고 선물을 전달했다. 역시나 'You're so sweet.'이라는 감탄사가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그들은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백인들 사이에 혼자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껴있는 이 상황이 아무래도 어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도 서로를 완벽하게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누군가는 새언니의 친구였고, 누군가는 오빠의 친구였고, 또 누군가는 새언니의 언니였다. 우리나라 식으로 해석을 해보니 사돈 집안사람들과 친구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울려 파티를 열고 있는 거였다.
저마다 생일 선물을 준비해왔는데, 대부분 직접 만든 음식들이었다.
누군가는 커다란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어왔고, 누군가는 크리스피 도넛을 연상시키는 달짝지근한 도넛을 쌓아 올려 도넛 케이크를 만들어왔다.
초콜릿 케이크엔 '40&Fabulous'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40세 생일 파티를 열던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지. 인생은 40부터.라고 생각하면, 한 살을 더 먹어도 슬프지 않을까?
저녁 식사 메뉴는 멕시칸 타코였다. 이를 위해 메릴의 오빠는 직접 요리를 해줄 멕시칸 요리사를 초청했는데, 집에 딸린 야외 수영장 옆으로 바비큐 그릴이 설치되었다. 환상적인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옆집 사람들 꽤나 괴롭겠는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릴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대화를 이어 나갔고, 폴은 어색할지도 모를 나를 챙기며 이것저것 마실 것을 가져다주었다. 메릴의 오빠가 폴을 찾았다. 새로운 투자 거리를 찾았다며 귀가 번쩍 뜨일 이야기를 꺼내 들어보니 비트 코인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 젊은이들 역시 비트코인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개인의 성향에 따라 공격적 투자를 할지 혹은 보수적 투자를 할지가 정해졌다. 언제나 소유하고 있는 주식의 값이 떨어진 이야기만 해주던 폴은 아무래도 비트코인의 투자에 대해서도 (메릴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을 바라보고자 메릴의 오빠가 챙겨준 마가리타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순간 아이들이 달려들었다. 파커와 파이퍼는 이 집 아이들이자, 메릴이 가장 예뻐하는 조카들이다. 파이퍼는 제법 숙녀 티가 나고 있는 초등학생 아이였고, 파커는.. 그야말로 천방지축 아가씨였다. 메릴과 폴의 한국인 친구 '수정'을 만난 적 있는 아이들은 나를 보더니 '수정과 닮았어'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국어를 늘어놨다. 그 한국어는 바로 '빨리빨리'였다. 와. 우리나라에 '빨리빨리'라는 단어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전 세계 어딜 가든, 심지어 5살 꼬마에게도 이 단어는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1부터 10까지 한국어로 세는 걸 보여주었다.
멕시칸 타코의 맛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채식주의자가 많은 미국에서의 파티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메뉴가 필수로 준비되어야 한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가 푸짐한 가운데서도 야채만 주구장창 담아내는 채식주의자 폴이 가엽게 느껴지는 건 오직 나만의 생각일 거다. 고기와 생선을 너무나 좋아하는 메릴은 폴에게 아쉬운 점은 딱 그거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폴을 너무 사랑하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지 못해도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일은 나에게 꽤나 중요한데, 역시 사랑의 힘이 더 큰가 보다.
식사를 마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파커와 파이퍼가 나에게 다가왔다. 생일을 맞은 부부를 위해 아이들을 하룻밤 맡아주기로 한 가족이 있었나 보다.
'안녕. 우리는 이모 집으로 가서 자기로 했어. 인사를 하러 왔어.' 하며 허그를 하고 내 볼에 키스를 해준다. 어머나, 사랑스럽기도 하지. 어쩜 이렇게 사랑이 가득한 아이들일까. 아이들로 인해 세상은 더 행복해진다.
반전은, 아이들이 떠나자 'Good bye Kids'라며 신나 춤을 추던 주인공. 그리고 본격적으로(?) 남아있는 어른들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그 장면이 너무나 웃기면서도, 아이들만을 위한 삶이 아닌 본인들의 행복과 사랑을 잊지 않고 챙기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와줘서 고맙다며 정말 꼬옥 하고 안아주는 오늘의 주인공의 품에서 따뜻함이 전해졌다.
가족의 파티에 초대해준 메릴과 폴에게도 고마웠고, 거리낌 없이 다가와준 아이들도 참 고마웠고, 새로운 경험, 새로운 만남들로 가득 찼던 이날의 모든 것들이 감사했다.
내가 마흔이 되는 순간에도 이날의 장면들과 40&Fabulous라는 단어가 다시 한번 떠오르게 되기를! 그러면 이날의 추억이 더해져 더 환하게 웃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