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03월의 바리스타
"어, 사장님. 여기 화면이 이상해요!!"
"네????"
주문하던 고객분이 외치는 소리에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봤더니 메뉴판용 모니터 화면이 3개 중 하나가 픽셀이 심하게 깨져있었다. 마치 외부에서 돌멩이라도 맞은 것처럼 화면이 나가 있어서 손으로 문질문질 해보아도 겉은 멀쩡했다.
액정이 나간 것 같아서 본사에 부랴부랴 연락을 취해서는 중고를 하나 구할 수 없는지 SOS를 해보았지만 급할 것 없는 본사는 이틀이 지나도록 함흥차사였다.
신세계가 열린다는 당x앱을 열어 이 동네 저 동네 검색을 해보고, 없는 게 없다는 중x나라도 검색을 해 보았지만 같은 모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초록창에서 검색을 하다 말고 우리 동네의 중고를 찾았다.
'유레카'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주말에 카페 동업 부부가 총출동하여 모니터를 교체하고 "이렇게 또 돈이 나가는구나.", "그래도 이 정도로 해결했으니 다행이야..." 서로 위안을 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마감 설거지를 시작하려는 찰나에 주문이 들어왔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해두고 우유를 꺼내는데, 주르륵 흘러내린다. 놀라서는 우유통을 다시 보니 그 탄탄한 바닥이 찢어져있었다.
부랴부랴 주문 들어온 메뉴를 내 드리고 나서 냉장고를 열었더니, 세상에... 냉장고 바닥이 우유로 흥건했다.
언니가 퇴근하기 전에 냉장고 우유를 정리해주고 갔는데 그때 힘자랑을 좀 했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그 두꺼운 종이를 뚫는 힘은 무어라 말인가....
냉장고에 있는 많은 병들을 모두 들어내고,
바닥에 말라가는 흥건한 우유를 세제로 닦아내고, 병 하나하나 닦아내고 어느덧 마감시간이 훌쩍 넘겨서까지 닦고 또 닦아야만 했다.
딱, 이틀이 지나고....
전자레인지 해동이 필요한 메뉴 주문이 들어왔다. 해동이 끝난 머그잔을 꺼내다가 회전 유리판과 컵이 살짝(정말이다.) 부딪혔는데 그 두꺼운 유리판이 깨졌다.
이건 나의 힘자랑이었을까?
다음날...
오픈을 하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데, 추출이 이상했다. 머신 돌아가는 소리도, 추출량도, 추출 상태도 심상치 않았다. 전화 문의를 하기에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문을 받았다.
시간이 갈수록 추출은 더욱 불안해졌고, 조금 더 심각해지면 운영을 중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카페 사장의 불안한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주문이 없었다.)
A/S 접수를 하고, 사정사정을 해서는 당일 출장을 오셨다.
모두 매뉴얼대로 관리해 주었음에도 카페 3년 운영으로 머신은 모터를 비롯한 중요 부품 2개가 운명을 달리했고, 방문 한 김에 점검해준 그라인더도 칼날 수명을 다했고...(3년 중 2년은 코로나로 매출이 바닥인데 뭐했다고 수명을 다하죠?)
카페 운영은 해야 하니 선택권이 없었다. 고장 난 모든 부품을 교체하는 수밖에...
모니터가 나가고, 냉장고가 우유로 엉망진창이 되고, 유리판이 깨지고, 머신이 고장 나고....
물론, 이 모든 일의 중심은 저조한 매출과 예기치 않은 비용 발생이었다. 카페 보릿고개라 하는 겨울이 지났음에도 카페에는 훈풍이 느껴지지 않아 마음은 스산한데, 멘탈 테스트를 해보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이 모든 일들이 일주일 만에 일어났다.
며칠 지나면 날아 올 3월 정산서를 마주 할 엄두가 나지 않지만
이 시간들이 보릿고개의 끝자락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