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렇지, 내 인생이...
23년 09월의 바리스타
목요일 카페 마감 정리를 하다 쓰러져서 의식을 잃고는 청소여사님께 발견이 되었고, 여사님이 직원들을 부르셨다 한다. 난, 6시 즈음... 마감을 하다 인턴 선생님들이 주문을 왔는데 그때 이상한 느낌이 와서는 미안하다고 돌려보낸 게 마지막 제정신이었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게 마치 한 화면처럼, 마지막 기억장면이다.
짧게 있는 기억으론 수간호사 한분이 나를 일으켜 세우며 정신 차려보라 하고 있었고, 전화를 하려 해도 지문이 걸려 있다며 어쩜 좋냐며 걱정하는 여사님과 지문으로 풀었다며 가족에게 연락했다는 직원.
그다음 기억은 적십자병원 응급실.
의식을 차려보라며 나에게 말을 거는 간호사와 말을 듣지 않는 오른 다리를 자꾸만 움직여 보라는 의사.
1번으로 저장되어 있는 신랑이 아니라 최근 연락처에 있는 아빠한테 연락이 갔다고 하고 아빠한테 연락받은 신랑과 언니가 병원으로 달려왔다 했다.
이들이 오기 전에 이미 엑스레이와 CT촬영을 했다는데 내 기억엔 없다.
응급실 간호사가 여기선 안 되겠다고 강북으로 연락을 돌리겠다 했고, 그다음 기억엔 내가 사설구급차에 산소통과 함께 실리고 있었다. 그때 잠시 의식이 돌아와서는 역류를 느끼고 고개를 들었는데 구급요원이 누워야 출발한다며 내 머리를 눌렀다.(역류 때문에 고개를 든 거란 말이에요....ㅜ.ㅜ)
뒷건물인 듯 가까운 곳이긴 하지만 가는 길은 기억에 없다. 다음 기억은 강북삼성병원 응급실 도착 장면인데, 그게 끝이다.
혈관이 안 잡혀 여러 간호사가 달라붙었고
동맥혈을 뽑겠다고 의사가 바늘을 꽂았다 하고
엑스레이와 폐CT. 뇌MRI를 모두 찍었다 하고
숨을 못 쉬어서는 TV에서나 보던 것 마냥 의사가 기도 삽관까지 했다 하고
넘어진 와중에 발견이 되기 전까지 구토물이 잘못 넘어가는 바람에 심각한 폐렴이 되어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한다. 말로만 듣던 위급한 응급실 상황이 펼쳐졌나 보다.
좀 더 일찍 발견되었으면 이 정도의 폐렴은 막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나마 병원에서 쓰러졌기에 그 처치가 가능했다는 천만다행인 상황이기도 하다.
내가 정신을 차린 건 다음날, 금요일.
산소호흡기를 비롯한 온갖 기계로 연결된 상태로 중환자실이었다.
면회가 가능한 지정 보호자 1인, 난 남편을 기억하지만 남편말로는 내가 그날까지도 혼수상태처럼 보였다 한다. 눈을 떴고 어디인지 인지는 했지만 기억이 드문드문인걸 보면 그날도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후에 뇌파검사를 한다며 중환자실로 출장을 다녀가셨다는 선생님을(심지어 대화까지 했다는데....) 월요일 검사에 첫 대면인 듯 인사했다가 선생님이 신기? 서운? 해 하셨다.
신랑한테 핸드폰을 가져다 달라 부탁을 해서 일요일에 핸드폰을 받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환자실엔 핸드폰 소유가 금지되어 있었는데 세상모르고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엄마에게 아침마다 장문의 카톡이 와 있었는데, 보자마자부터 눈물이 나서는 톡을 주고받을 때마다 그리 눈물이 났다. 맞은편 침대엔 뇌졸중 수술을 하신 어머님이 누워 계셨는데, 울고 있는 날 쳐다보시는 눈빛이 매번
'니 맘 안다...'
하는 눈빛이라 더 눈물이 났었다.
숨쉬기 벅차하며 가래로 핏덩이를 뱉어내고 있으면서도 일반병동으로 올라가면 안 되겠냐는 질문에
"환자분 폐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냐면요. 노인이었거나 흡연자였으면 생사를 논했을 상태예요. 우리도 엑스레이 보고 이게 뭐지? 할 정도였어요."
저 왼쪽 폐는 수술했던 적이 있어서 원래 안 좋았어요... 라며 내 상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더니
"오른쪽폐가 문제예요"
"아......."
입원할 때만 해도 14가 나왔던 헤모글로빈 수치가 8점 몇이 나왔다한다. 가래에 피가 나오는 것만으로는 떨어질 수 없는 수치라 7까지 가면 수혈을 하라고 주치의가 오더를 내리면서, 일반병실 운운할 때가 아님을 한번 더 일깨워주고 갔다.
다행히 헤모글로빈 수치는 더 떨어지지 않았고, 목요일 저녁에 쓰러져서는 월요일에서야 일반병실을 올라왔는데 주치의가 숨 가쁘게 달려왔다.
"큰일 났어요. 결핵균이 나왔어요."
1차 검사에서 결핵균이 나왔단다. 간호사가 달려와 나에게 바로 마스크를 씌웠고, 정확하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리는 2차 확정검사에서도 결핵이라 판정되면 1인실로 격리되어야 하니 스텐바이 하라했다.
다행히 최종 2차 검사와 이후 몇 번의 반복검사에서도 결핵이 아니라 나왔고, 화요일부터 죽을 시작 했고, 수요일 오후에서야 산소를 뗐다.
명절은 집에서 보내고 싶다고 고집부려서는 연휴 첫날 퇴원에 성공했다. 7박 8일의 일정이 끝났다.
의식을 이틀이나 잃은 탓에,
생각보다 중환자실 입원이 길었던 탓에 양가 가족을 모두 놀라게 했고
내 인생의 진단서에는 병명이 하나 더 붙었고
먹어야 할 약이 늘었고
조심해야 할 일들이 늘어났다.
10년간 조용하던 내 인생에, 가족 관심사병에서 벗어나나 싶은 기대와
'내 인생이 웬일이지?' 하며 신기하기도 불안하기도 했었는데 역시나, 그럼 그렇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인생인 척 그렇게 살다가도 인생의 무게가 덮쳐 들어 날 주저앉힐 때가 있다.
한 동안은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