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걷다_#15. 의사의 실수

Chapter 49. 수술 여섯 번째.

by 콩알이

병원에서는 급하게 연락이 왔지만 별 기대 없이 진료를 갔더랬다.

오히려, 원인을 모르겠다는 답을 또 듣게 될까 무서웠다.

시큰둥하니 진료실을 들어갔는데, 선생님이 검사 화면을 가리키며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지난번 수술이 여기 늘어진 부분들을 잘라내는 수술이었는데,
내가 그때 여길 덜 잘라냈더라고...
이 덜 잘라낸 부분에 음식물이 고여서 출혈이 있었네.
미안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실수를 인정하기 쉽지 않은 의사들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다." 사과를 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화를 내자니, '내가 밥을 삼킬 수 있게 된 건 선생님 덕분인데...' 하는 생각과 동시에

지금의 수술을 해야 할 사람도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를 낼 수 없었고

그렇다고 원인을 찾아줘서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5년간의 알 수 없던 출혈이,

내 일상을 짓밟았던 그 시간들이 단순히 의사의 실수였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입원 날짜와 수술 날짜가 잡히면 연락하겠다는 의료진의 말을 뒤로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진료실을 나왔다.


수술을 위해....
내일 입원하라는 연락이 왔다.
병원에서 씻기 편하게
2년을 기른 머리도 잘랐고
책도 사고... 드라마도 다운받아두고...

5년을 출혈과 씨름하며 지냈는데
결국은 개복수술을 해야 하는
허탈함과... 씁쓸함과...

내 인생에,
또 이렇게 무너져야 하는 참담함...
내 노력과, 숱한 발악에도
결국은 백기를 들고 말았다.

수술을 하기 전까지는
의사들의 무책임한 말들과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최악의 가정에
무수히 무너지고 울겠지만...

난. 이겨낼 것이다.....
잘될 거다.
잘될 거다.

13.05.29



다시금,

딸의 개복수술 병간호를 위해 엄마는 짐을 챙겨 올라오셨고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 생각하자고, 내 등을 토닥이며 딸의 허탈함을 달래주셨다.



일어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일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고....
그 어떤 일에도 토 달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사인도 하고...
이것저것 모든 검사와 준비를 마쳤다.

새벽이면 부산한 마지막 체크를 하고,
난 몇 시간이 될지 모를
수술을 받게 된다.

5년간의 긴 싸움도,
더는 없을 거라 바랬던 수술도...
이젠 정말 마지막이길..

오늘 밤엔,
정말 정말 좋은 꿈 꿀 거다...
13.06.03


5시간의 수술로,

그렇게..... 5년간의 터널이 끝났다.


5시간의 수술 후....

출혈이 멈췄고,

알 수 없는 열꽃과 염증도 사라졌으며,

이유를 모르겠다던 갖은 통증들이 사라졌다.




대학생이 되고 부터였었나....

명절이 되면 항상 선생님께 인사메일을 드렸었다.

잡히지 않는 출혈에도 끊이지 않고 메일을 드렸는데, 오랜 기간 동안 "모르겠다."로 일관해 오던 출혈이 "의료사고구나." 하는 뒤통수를 때린 후엔 메일이 써지지 않았다. 내심 서운하셨던지 요즘은 왜 메일을 안 보내냐는 선생님의 핀잔에도 씁쓸함이 남았고, 그분의 퇴직을 챙겨보고 있었지만 연락을 드릴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어둠 속에서

끝이 있을 거라 믿으며 견뎌준 내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하지 못했던 감사함을 전하며,

스스로에게도... 잘 견뎠다. 인사를 건네고 싶다.


p.s

"너 건강이 먼저야. 회사 걱정은 접어둬."라며 부담을 덜어주신 신부장님과

담담히 지켜봐 주신 이팀장님...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잠시라도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직장 생활을 유지해 가며 버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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