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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10년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되는 것

by 레마누


벌초


조꼬띠 오라

고만이시라

무사경 조들암시니

어떵안허다

아무것도 허지 말라


어떵 살암시니

밥은 먹엄시냐?

기여게

난 잘 있저


눈멜랑지게 울엄시냐

경허지 말라

못 갈디 간 거 아니난

생각도 하영 허지 말고

요망지게 살당 오라


조꼬띠 앉앙

고만이 이시라

얼굴이나 호꼼 보게

풀 안 뽑아도 조타게

아무것도 허지 말라


나가 보고픈 건 너 뿐이난.






어렸을 때는 제주도사투리가 듣기도 싫었고 하는 것도 싫었다.

버스가 30분에 한 번씩 다니고,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구멍가게에 가려면 십 분을 걸어가야 했던 시골마을.


동네사람들은 다 가지고 있는 과수원 하나 없어서 남의 밭 일을 도와주며 살았던 부모님. 하지만 젊고 예쁜 엄마는 제주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매일 아침 쌀뜨물로 세수를 하고 밭일을 나가곤 했다. 엄마 따라 표준어만 사용했다


네. 아니요. 왜요?

할머니 식사하세요. 할아버지 뭐 하세요??


교과서에 나오는 말을 흉내 내고 긴 머리를 손으로 넘기며 짧은 머리의 반아이들과 나는 다르다고

속으로 철벽을 세우며 살았다.

언젠가는 도시에 가서 살 거야.

사투리는 쓰지도 않는 세련된 곳에서 살 거야.



제주사투리의 투박함이 싫었다

크고 거센 목소리로 화내듯이 하는 말들이 듣기 싫었다

자기 말만 하는 건 대화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제주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제주시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시골에서 산 건 11년 정도.

살았던 시간보다 살고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런데 왜

시골이 자꾸 생각날까?


일부러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사투리였는데 요즘은 자꾸 쓰게 된다

사투리로 말해야 하는 말들이 있다.

표준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사투리에 담겨 있다.


사투리를 쓰지 않았던 엄마의

지금은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굳이 사투리로 끌고 온 건

점점 사라져 가는 엄마의 흔적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이런 말 써 본 적도 없는데

엄마는 할머니가 되기 전에 죽었으니

만약 살아있다면

일반적인 제주할머니들처럼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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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엄마는 여전히 젊고 예뻐서

늙은 엄마를 상상할 수 없는

나는

고두심이 갈중이입고 사투리를 쓰면

꼭 우리 엄마 같아서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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