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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Apr 24. 2023

당신의 첫사랑은 어땠나요?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그때 그 시절의 내가.


그를 처음 본 건 중학교2학년 11월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나는 뭔가 할 일이 남았던 중2였다. 글짓기나 웅변대회준비나 뭐 이런저런 이유로 토요일에 아이들과 같이 집에 가는 버스를 타지 못하고 3시쯤 혼자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잔뜩 흐린 날이었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만 같은 무거운 구름이 머리 위에 있었다. 나를 짓누르는 선생님들의 기대와 응원에 호응하고 싶은 마음과 엇나가고 싶은 마음이 싸우고 있을 때였다. 작은 일에도 크게 웃고, 지나가는 말에도 발끈해서 엇나갈 준비만 하고 있었다. 누가 건들기만 해 봐라. 준비땅. 하고 있었다. 




그때 그가 길 건너에서 지나갔다. 노란색과 감색이 반반 섞인 파카를 입고 하얀 얼굴을 숙인 채. 방금까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중2였던 나는 갑자기 가슴이 뛰고 얼굴이 빨개졌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버스도 지나가는 사람도 멈춰있었다. 오직 그만 보였다.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종이에 적힌 이름만 봐도 가슴이 뛰었다. 부모님이 받으면 끊고. 동생들이 받아도 끊고, 그가 받아도 끊었다. 공중전화 속에서 동전을 집어넣고 그의 집 전화번호를 누르는 것만이 중요했을 뿐이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용기도, 그와 전화통화를 할 용기도 없었다.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행동은 덤벙됐다. 바보가 됐다.  눈이 나빴던 내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그만은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그는 나의 운명이었고, 사랑이었으며, 넘볼 수 없는 사람이었고, 아픔이었다. 




그렇게 호되게 아주 호되게 첫사랑을 만났고, 그에게 거절을 당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선후배 사이로 지내자는 말 한마디에 기대어 6년을 보냈다. 그의 고등학교 옆에 있는 여고를 주저 없이 선택했다.




너무 좋아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와 여고시절의 내게 전부인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좋아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매일 꿈에 나오고. 그만 생각하고 살 수 있는지.  그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다. 그에게 쓴 편지가 거리를 메우고, 그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바꾼 십 원짜리 동전이 가방 한가득 할 때쯤. 




내가 탄 시외버스에 그의 어머니가 타는 게 보였다. 괜히 얼굴이 빨개졌다. 잔뜩 긴장하고 앉아 있는데 아줌마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들? 나는 뭐 바라는 거 없어. 그냥 키가 165는 넘어야지. 우리 집에 들어오려면."



그의 키는 180. 그의 동생들도 그의 아버지도 심지어 어머니도 키가 큰 집이었다. 나는 160 언저리에서 더 자라지 않았다. 굳이 반올림을 해서 160이라고 했지만 159랑 158을 왔다 갔다 했다. 신발사이즈가 235에서 240인 것처럼.




1센티가 아쉬웠지만 아무리 너그럽게 봐도 160은 안 되는 내 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아들의 짝은 165를 넘어야 한다는 그 사람의 어머니의 말을 듣자 속이 울렁거렸다.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한테는 내가 최고의 딸인데. 큰딸이라고 밭일도 시키지 않고, 주말에도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만 원짜리를 찔러주며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라고 말하는 우리 엄마. 




내가 희멀건 남자아이를 쫓아다니는 줄도 모른 채, 그 남자아이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엄마에게 영어사전이니. 학원비니 하며 돈을 뜯어낸 줄도 모른 채 비 올 때만 빼고 밭에 가는 우리 엄마. 




순간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가 뭐라고 우리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까?




내가 행여나 그와 인연이 돼서 사랑을 한다고 해도 그의 어머니가 이토록 완고한데 그러면 나는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게 뻔한데. 그럼 나를 사랑으로 키워준 우리 엄마는 뭐가 되는 거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빴다. 아침드라마의 한 장면이 지나갔다. 



시외버스에 울려 퍼지는 트로트메들리에 맞춰 점점 커지는 내가 예비시어머니라고 생각했던 그분의 목소리.  그렇게 대단한 아들이라면 저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때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좋은 후배로 남았다. 그는  오빠. 오빠 하며 매일 전화하고 편지 쓰던 후배가 죽어도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아이가 연락을 끊은 이유를 모른다.



오래전 일이다. 책장정리를 하다 그때 쓴 일기장이 보였다. 청소할 때 주의사항 중 하나. 일기장을 절대 펼쳐보지 말 것.  알고 있으면서 그만 일기장을 펼쳐보고 말았다. 아뿔싸. 17살의 내가 부르고 쓴 이름은 오직 그밖에 없었다. 그때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내가 얼마나 진지하게 그를 생각했는지 떠올랐다. 웃음이 났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건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운 게 그 사람이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열일곱의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늘도 얼굴 한번 빨개지며 잘 가고 있다. 무탈하게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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