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책상에는 포스트잇이랑 공책이 많이 있대.
한가한 주말오후였다. 아이들은 빨간 날에만 하루에 5번 30분씩 할 수 있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나는 방에서 책을 읽는 중이었다. 게임이 끝난 초등학교 3학년 막둥이가 옆에 와 앉더니 뜬금없이 말했다. 책을 덮고 아이의 눈을 쳐다봤다.
-2반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는데, 책상에 물건이 많다고 했어.
선생님이 하는 말이라면 한마디도 허투루 듣지 않는, 아직은 순수함을 간직한 막둥이의 말을 들으며, 시선을 따라갔다. 아뿔싸!! 나에게 하는 말이었구나.
내가 집에서 부엌 다음으로 오래 머무는 공간은 컴퓨터방이라고 부르는 작은 방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 방은 남편이 썼다. 동쪽으로 난 큰 창문 쪽에 긴 책상을 놓고 그 위에 컴퓨터 두 대를 올려서 게임을 했다. 한쪽 벽에는 남편의 옷을 걸어놓은 행거와 서랍장이 있다. 남편은 게임을 시작하면,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은 컴퓨터게임을 끊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갔다.
덩치가 큰 컴퓨터를 치우고, 노트북을 올렸다. 책상 양 옆에 서랍장을 놓고, 책을 채웠다. 손만 뻗으면 되는 곳에 작법서들과 글을 쓰다 막히면 읽는 고전들, 생각이 떠오를 때 적어놓는 노트들을 꽂았다. 어떤 소설가가 상황이 떠오를 때마다 포스트잇에 적고, 커다란 종이에 붙여 놓는데, 그것만 이어도 한 편의 소설이 된다기에 나도 따라서 여기저기 글이 가득 찬 포스트잇을 붙였다.
또 읽어야 할 책들이 있고, 읽은 책들이 있다. 2인용 책상 가운데 노트북이 있고, 오른쪽에 프린터기가 있다. 노트북 왼쪽에는 다 읽었는데, 아직 책장에 꽂지 않은 책들이 몇 권 쌓여있다. 오른쪽에는 읽었는데, 포스팅하지 않은 책 5권 정도가 지그재그로 쌓여서 언제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저기 노란 포스트잇들이 보인다. 한번 꺼내놓고, 썼다 제 자리에 넣지 않아서 또 다른 걸 꺼내 쓰곤 하는데 어떤 날은 집에 있는 포스트잇이 전부 나온 적도 있었다.
정리하지 못하는데, 사는 건 잘한다. 책 읽는 건 좋아하는데, 포스팅하는 건 여전히 힘들다. 한숨에 써 내려가는 글은 쉽지만, 개요를 작성하고 맞춰 쓰는 글은 못 쓴다. 아, 그래서 내가 소설을 못 쓰고 있구나.
주제를 정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소재를 찾고, 개요를 작성하고, 줄거리를 쓴다. 상황과 인물에 맞는 에피소드를 더한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신이다. 뭐든 다 알고 있어야 한다. 소설 속에서는 말 한마디 손짓 하나도 제 역할을 한다. 허투루 쓰이는 문장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잘 짜인 연극처럼 소설도 짜임새가 있어야 한다. 알고 있는 것 중에 실제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나를 잘하는 사람이 열을 잘한다. 하나도 못하는 사람이 열개나 잘하고 싶어 하니 죽도 밥도 안 되는 건 당연하다. 책상정리가 문제가 아니다. 쓰레기통 같은 작업실에서도 모든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고 말했던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자신이 통제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나는 지금 통제불가상태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잡고 글을 쓴다는 건 한계가 있다. 생각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쓸수록 선명해져야 하는데, 쓰다 보니 산으로 간다. 완성된 글을 보면 처음에 생각했던 글은 이게 아닌데 싶지만, 썼으니 됐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남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뭐든 반대로 하면서 반성은 또 잘한다.
-엄마도 책을 많이 읽으니까 그런 거 맞지?
막둥이가 마지막 펀치를 날렸다. 우리한테는 맨날 책상정리 똑바로 하라고 하면서, 왜 엄마책상은 이렇게 지저분해? 엄마도 볼펜 있는데 문방구갈 때마다 사는데 왜 난 그렇게 하면 안 돼? 엄마는 왜 그래?
막둥이가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이 허공 속에 떠다녔다. 미안하다. 막둥아. 엄마가 언행일치가 안 되는 사람이구나. 본보기는 못 될지언정 나쁜 걸 가르치면 안 되는데. 혼자서는 못 하는 것도 아이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바뀔 수 있다. 아이들이 다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