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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왔다. 조금 슬퍼졌다.

가슴에 박혀 찌른다 자꾸

by 레마누


나는 농촌에서 나고 자랐지만 농사일을 많이 하진 않았다. 부모님은 비 오는 날 빼고는 밭에서 일을 했다. 자기 밭이 없어서 남의 밭을 빌어 농사를 지었다. 동네 사람들이 어버이날 행사를 갈 때도, 학교운동회 때도 밭에 갔다. 소풍도 운동회도 엄마 없이 내가 싼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


부모님이 밭에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동생 두 명이 나보다 컸기 때문이다. 나는 큰 딸이었지만 키가 제일 작았다. 몸집도 작고 힘도 없었다. 아빠 표현에 의하면 일머리도 지독하게 없다. 동생들은 5학년 즈음 나보다 크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아빠는 외가 닮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날 쳐다봤다



키는 작은데 자존심이 셌다. 나는 조금만 먹어도 배가 아팠는데 동생은 밥만 먹어도 쑥쑥 자랐다. 자고 나면 커져 있는 동생이 미웠다. 밥을 먹는 동생의 머리를 때렸다. 동생은 내게 머리를 쥐어박히면서도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곤 했다. 동생이 밥을 먹는 게 미워서 째려보느라 밥도 못 먹고 성질만 내느라 배가 늘 아팠다



아빠는 유난히 작은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시곤 했다. 써먹을 것 없는 아이라고..


동생들은 나보다 키가 컸고 밥도 많이 먹었으며 힘도 셌다.


나는 농촌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이였다. 걸핏하면 아프고 심지어 풀알레르기까지 있어서 밭에 한번 나갔다 오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아빠가 또 말했다

저것을 어디다 써야 할까.



그래도 나는 철마다 바뀌는 밭이 좋았고, 들에 나가면 푸른빛이 감도는 게 좋았다.



농약줄을 잡아당기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벌레소리 듣는 게 좋았다. 아빠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내가 못마땅했다. 농약줄을 똑바로 잡아당기지 못해서 감자꽃이 꺾어졌다. 화가 난 아빠가 돌을 집어던졌다. 나는 서럽고 서러웠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던 나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빙빙 돌며 살았다.




엄마는 몸집은 나만큼 작았지만 일을 잘했다. 원래 잘했는지 하다 보니 잘했는지 어쩔 수 없이 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아빠눈에 들게 일을 했다. 하지만 아무 짝에도 필요없다던 나는 살아 있고, 농촌에서 일 잘했던 엄마는 일하다가 죽었다.



나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마늘종으로 장아찌를 만든다. 엄마가 있었으며 거저 얻어왔을 텐데 마트에서 다발째 사다 놓고 장아찌를 만든다. 마늘종 장아찌는 맥주랑 같이 먹으면 기가 막히게 맛있다.


내가 먹는 게 엄마의 마음인지 인생인지도 모른 채 그저 여름이 올 때쯤이면 죽은 엄마가 생각이 나서 어쩔 줄 모른다. 밭에서 더운 김이 올라오면 엄마생각이 절로 난다.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데 그리움이야말로 절로 우러나는 것이라 가만히 둬도 애써 외면해도

때가 되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일요일 아침 열심히 양념장을 끓였다. 올여름 내내 잘 먹을 것이다. 입맛이 없을 때(라고 말은 하지만 한 번도 입맛이 없을 때는 없었다) 금방 한 밥에 마늘종 장아찌만 먹어도 좋고, 가끔 고추장양념을 해서 먹어도 좋다.


마늘 쫑 장아찌를 해 놓으면 일 년치 삯을 다 치른 것처럼 든든하다. 5월이 되면 사람도 밭도 나무들도 분주해진다. 흙에서 더운 김이 올라온다. 패랭이를 쓰고 몸빼를 입은 삼촌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나는 그 사람들이 다 엄마 같아서 가슴이 철렁철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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