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Sep 27. 2024

워치와 운동은 무슨 관계?

인증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7월 독서모임 선정도서는 "오늘도 나는 달린다"였다. 책을 읽고,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운동의 중요성에 대한 말이 나왔다. 비슷한 연령대라 그런지 고민이나 생각들이 일치할 때가 있다. 운동은 하고 싶지만, 혼자 하는 운동은 재미없었다. 그렇다고 크루에 가입하거나 약속해서 하는 운동은 변수가 많은 나에겐 무리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우리는 매일 운동하고 인증하는 단톡방을 만들었다. "오늘도 나는 성공한다."라는 방 안에서 운동인증하고, 서로를 격려한 지 석 달이 되어 간다.


 백일이면 마늘만 먹은 곰이 사람이 되는 시간이다. 인증이라는 게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다른 사람의 인증글이 올라오면 마음이 급해진다. 나도 뭐라도 해서 빨리 올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몸이 안 좋거나 일이 바빠서 인증을 못하면 마치 숙제 안 하고 학교 가는 것처럼 마음이 불안해진다. 운동을 많이 한 날은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인증사진도 신나게 찍어 올렸다.


올여름은 더웠다. 정말 많이 더웠다. 그래서 걷기보다 집에서 근력운동을 했다. 유튜브를 검색하다 만난 "빅씨스"언니와 함께 근력운동을 했다. 30분 동안 힘들게 운동하면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남편이 선물해 준 스마트 워치가 맹활약을 했다. 운동시간과 칼로리소모, 심박수를 부지런히 체크해 준 덕분에 운동할 맛이 났다. 


인증방에서도 심박수와 칼로리를 보며 회원들끼리 자극받았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한 결과, 어제 건강검진에서는 살짝 보이던 지방간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다. 몸무게는 2년 전 검진 때보다 1킬로가 늘었는데, 내장지방이 빠졌다. 복부초음파를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췌장이나 간이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고 했다. 같이 검사한 남편은 잘 안 보였다. 뭔가 내가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구불구불한 내 몸속 췌장과 간, 신장들을 보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나를 위해서라도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


문제는 워치다. 3년 전 골프에디션으로 구입한 워치를 그동안 골프장 갈 때만 사용했는데, 본격적으로 운동하기 시작하면서 매일 워치를 착용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배터리가 너무 빨리 떨어졌다. 아침에 100%인 걸 확인했는데, 운동하려고 보면 꺼져 있는 것이다. 워치 없이 운동한다는 건 앙꼬 빠진 찐빵이요, 패티 없는 햄버거와 같았다. 워치에 찍히는 심박수와 칼로리가 없는 운동은 무의미했다. 


워치가 고장 나기 시작하자, 나는 근력운동대신 걷기를 선택했다. 어쨌든 매일 인증은 필수다. 마침 날이 선선해져서 나는 만보인증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근력운동도 해야 한다. 워치를 고쳐야겠다 마음먹고,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수리기사는 내 워치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수건을 꺼내 깨끗하게 닦기 시작했다. 뭐가 많이 깔려 있다며 초기화가 필요하다길래 알았다고 대답했다. 배터리를 충전하며, 이것저것 검사를 하던 기사가 나를 불렀다.

-메인모드가 나간 것 같습니다. 수리비가 18만 원입니다.

-녜? 아니. 그렇게 많이 나오나요? 전 운동할 때만 워치를 꼈는데, 왜 고장이 났을까요?

-땀을 많이 흘리고 잘 닦지 않으면, 땀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보니까 아무리 수건으로 닦아도 잘 닦이더라고요.

-맞아요. 한 번도 안 닦았어요.


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18만 원을 주고 수리할 바에는 새 거를 사는 게 낫다. 내 워치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올여름 왼쪽팔목에서 나의 심박수를 체크해 주고, 만보가 넘을 때마다 목표달성을 축하해 주던, 나보다 내 몸을 더 잘 알았던 워치와 나는 아쉬운 작별을 했다. 


사람마다 품목은 다르겠지만, 일상에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노트북과 프린터기, 워치가 그렇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노트북이 두 동강이 나서 수리를 받았다. 방금은 인쇄를 하다 마지막 종이가 프린터중간에 끼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프린터 너까지 고장 나면 안 돼.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끼인 종이를 꺼냈다.


소중한 것들은 자주 쓰는 것들이다. 자주 쓰기 때문에 혹사당하는데, 소중한 만큼 아끼지 않았다. 늘 가까이 있어서 몰랐다. 떨어져 박살이 나지 않는 한 조금씩 고장이 났을 텐데, 나는 기계들을 사용할 줄만 알았지 소중하게 다루지 않았다. 끝까지 가야 완적 먹통이 돼서야 알아차리고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멀쩡한 아이들을 데려와서 실컷 부려먹어 놓고, 힘들다는 말에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하는 악덕업자가 나였다. 운동할 때 팔목에 땀이 차서 심박수가 안 찍히는 건 알았으면서(땀이 차면 워치가 자꾸 팔목 위로 올라갔다), 그걸 닦을 생각을 못 했다. 노트북을 열 때 뒤로 한껏 젖히는 버릇이 나중에는 두 동강 나는 사태를 불러왔다. 인쇄할 때 종이가 다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잡아당겼다. 잘못은 내가 해 놓고, 애먼 데 화풀이한다.


다음에는 조금 달라질까? 달라져야지. 소중함을 알았으니 설마 달라지겠지? 워치는 또 어떻게 사야 하나. 어디서 돈이 뚝 떨어지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