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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발행하기

백일글쓰기 13

by 레마누

자기 전에 쓸거리를 생각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책상에 앉는 순간 다른 게 쓰고 싶어졌다. 일기장에 써 놓은 글을 7시에 맞춰 발행해야지. 하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어제부터 날이 추워진다고 하더니 비상문자인가 생각했다. 주인공이 햇빛 속에서 총을 꺼내고 있었고, 총을 꺼내면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고 말한 작가가 누군지 기억이 안 나 낑낑대고 있을 때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무슨 일이지? 그제야 핸드폰을 집어 확인했다. 6시부터 강의 시작입니다. 입장하세요. 이런. 오늘 수업을 까먹었다. 분명 어제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브런치 글을 미리 쓰고 수업준비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잠을 자고 났더니 다 까먹었다. 맛있게도 먹었다



6시 20분에 줌수업에 들어갔다. 7시 발행할 글도 못 썼다.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할 새도 없이 강의에 빠져든다. 재미있다. 유용하다. 좋다. 그래, 이렇게 글을 써야 하는데. 진지하게 직장인처럼, 프로의 글쓰기를 지향하면서 하는 짓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다. 갈 길이 멀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글을 쓰니 마음처럼 글을 안 나오는데, 7시가 훌쩍 지났으니 어쨌든 발행을 해야 한다. 이런 글을 발행해도 되나 싶지만, 일단 발행한다. 등교시간에 맞춰 뛰어가는 아이처럼, 일단 발행한다. 숨을 헐떡이며 교실에 들어가 옷매무새를 다듬듯, 발행하고 난 후, 다시 쓴다. 소리내 읽으며 술술 읽히지 않는 부분을 찾는다.



세차하기 전에

일기예보를 봤는데

3일 내내 비였다.


집에 오는데

햇빛 쨍쨍이라

세차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새벽에 빗소리를 들으며

안 하길 잘했네 중얼거렸다

하룻밤 새

마음이 세 번 뒤집혔다.


일기장에 이렇게 써 놓고, 소설을 읽었다. 소설에 빠지면 아무것도 못 한다. 그런 소설을 써야 하는데 .

쓰고 보니 종결어미 '데'가 많다. 하면 되는 걸 하지 않은 자가 미련을 질질 끌고 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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