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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는 손님

백일 글쓰기 No.14

by 레마누

오지 않는 손님

-레마누-


오지 말라고 할 때는 기를 쓰고 와서

몸을 흔들고

바닥을 기게 하고

속을 뒤집어 놓고

아무것도 못하게 하더니


와야 할 때는 감감무소식이라

달력을 들춰보고

새벽에 깨서 멍하니 앉아 있고

얼굴은 벌게지고

괜히 섭섭해서 한숨짓는다


고되고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라

때 되면 갈 테니 조급하게 굴지 마라

하는 말을 흘려듣고선

빨리 가라 난리피고

불편하다 구박하고

필요 없다 야단 피웠다



세 아이를 낳았으니 됐다 싶다가도

진짜 갔나? 싶고

몸이 뽀사지는 게

그 때문인가? 하면

모든 게 설명된다. 이제 안 오려나보다.

한 달에 한 번 오던 빨간 손님이.




며칠째 몸 상태가 별로다. 집 앞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갈 생각이 안 난다. 예전에는 시간 날 때마다 헬스장에 갔는데 귀찮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나면 방전이다. 아침밥을 차려주고, 이불 안으로 들어간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눕는다. 딱히 어디가 아픈 건 아닌데 잠이 쏟아진다. 몸에 힘이 없다. 에너지를 끌어오려고 해도 끌어올 에너지가 없다. 충전이 필요한데 충전기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24년에는 한 달에 두 번, 어떤 달은 열흘에 한 번씩 오더니 24년 말부터 소식이 없다. 원래 큰 딸이 끝나면 내가 시작했는데, 큰 딸이 세 번 끝나는 동안 나는 만나지 못했다. 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나를 꼭 안아준다. 엄마, 힘들겠다. 아들은 그럼 엄마 이제 남동생 못 낳는 거냐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극 E감성에 자기만 아는 아들다운 말이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뭔가 슬픈 느낌이 든 막둥이도 와서 안아줬다. 이불속을 비집고 들어와 나란히 누워 있다 나가는 세 남매를 본다.



손톱 주변에 거스러미가 자꾸 생긴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하나둘씩 생겨 났다. 미운 조개손톱이 더 미워졌다. 쓸데없는 미련 같아 보여 손톱 손질을 부지런히 한다. 네일숍에 가면 좋겠지만 시간도 돈도 없는 나는 다잇소에서 산 손톱관리용품으로 부지런히 갈고 자른다. 평범한 손톱처럼 보이기 위해 나만 아는 시간과 노력을 가한다.


픽사베이


나무에 생긴 옹이 같다. 마르고 거친 나무줄기에 비해 더 단단한 옹이처럼 마음속에 맺힌 감정들이 쌓인다. 시간을 두고 쌓이면서 단단해진다. 옹이는 나무가 성장하면서 만들어진 가지의 흔적이다. 그렇다면 내 마음의 옹이들은 나를 성장시키느라 생긴 흔적들일까? 얼마나 큰 나무가 되려고 이리도 많은 옹이들이 생겨나는 걸까?



자꾸 움츠려 든다. 이럴 때는 마음의 소리를 끄고 해야 할 일만 생각한다. 7시 발행할 글을 쓰고, 계란 10개를 삶아서 식탁에 놓는다. 아이들이 먹을 아침거리도 옆에 두고 커피를 내린다. 7시부터 9시까지 독서모임에 참석한다. 오늘 발행할 글의 초안을 작성한다. 자꾸 눕고 싶다고 칭얼대는 말은 무시한다. 너 지금 힘들잖아. 하며 위로하는 척 유혹하는 말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런저런 역경과 고난이 있지만 극복하고 끝내 해내는 사람이 된다. 나는 지금 그것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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