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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다짐이 필요하다

백일 글쓰기 N0.15

by 레마누

소설 <쑤우프, 엄마의 이름>중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만약 진실이라는 것이 크레파스이고, 크레파스에 종이를 감아 내 마음대로 그 색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나는 진실을 무슨 색이라고 해야 할지 안다. 그건 바로 공룡 색이다. 깊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나는 공룡이 어떤 색인지 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건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사실, 짐승의 뼈만 보고 그 몸의 색깔을 알아낸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공룡의 진짜 색깔이 어떠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공룡 그림을 볼 때면 누가 했더라도 어떤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색을 칠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색들은 단지 상상일 뿐이다. 나는 이 사실을 열세 살 나던 해, 어느 가을 오후, 로이 아저씨의 순찰자 조수석에서 깨닫게 되었다. 또, 거의 같은 때에, 뭔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건 꼭 어리석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말은 얼마든지 생각해 볼 구석이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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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공룡색은 리버티를 향해 길을 떠나던 날 아침 올려다보았던 하늘과 같은 색깔이지 않을까? 아니면 힐탑 요양원 앞길을 올라갈 때 내 발길에 차이던 갈색 먼지 같은 색깔은 또 아닐까?


그때, 나는 어떤 신실이든 반드시 알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특별한 까닭도 없이 그저 알고 있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꼭 알고 싶어 안달을 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는 있든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공룡은 파란색이라면 파란색이고, 갈색이라면 갈색이다. 누군가 그것을 사실로 알든 모르든. P.7~P8




어제 9시에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단톡방이 요란했다. 25년 공지사항을 올린 것에 대한 문의와 확인요청이었는데 자느라 놓친 것이다. 회장이 되고 첫 공지사항이었는데 무책임한 것 같아 얼굴이 빨개졌다. 새벽 4시 답을 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다. 날이 밝으면 톡을 보내야지 생각하고 글을 쓰는데 지금까지 썼다 지웠다 서랍에 보냈다 반복이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이렇게 글이 안 나올 수도 있다니. 생각을 멈춘 머리통을 쿡쿡 찔러본다. 반응이 없다. 오늘은 도무지 돌아갈 생각이 없나 보다. 시선을 돌려 책장을 본다. 예전에 써놨던 노트들이 보인다. 그중 한 권을 꺼내 읽는다. 3년 전에 쓴 독서노트였다. 그래, 이런 책을 읽었지. 맞아. 이 책 좋았는데. 이 책은 대출했나? 집에서 안 보이는데.



청소하다 말고 사진첩을 보거나 편지를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있다. 그때를 돌아보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 과거의 힘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빠져들며 읽었다. 재미있었다. 갈겨쓴 글씨, 그 시절 소통했던 블로그 이웃들의 글을 읽으며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아무것도 안 한 줄 알았는데, 뭐라도 했다. 지금 이 순간 역시 언젠가 기억될 추억이 된다. 할 말이 생겨야 쓸 거리가 있다.


가끔 내가 뭘 하고 있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코드를 뽑아버린 전자기계처럼 아무것도 못한다. 이걸 해서 뭐 해? 아무도 안 보는 거. 내가 뭐라고. 하지도 못하면서 욕심만 부리는 거 아냐? 힘들게 하지 말고 편안하게 살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생겨. 부정적인 감정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하루라도 긴장을 풀지 않으면 기세등등하게 나를 점령할 것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일단 날이 밝으면 톡에 답을 남긴다. 오늘 수술하는 언니에게 격려의 톡을 보내고, 어제 쓰지 못한 편지를 쓰고, 책 포스팅을 한다. 12시부터 5시까지 막둥이네 반모임에 참석한다. 읽고 쓰며 하루를 보낸다. 나는 현재 엄마이자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7시가 넘었다. 발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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