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겨울은 찾아온다.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햇빛 쏟아지고, 가을에 열매 맺듯 겨울이 온다. 봄은 언제까지 찬란하게 빛날 줄만 알았다. 여름이면 소나기 피할 궁리 하느라 바쁘고, 가을에 열린 열매를 따 먹으며 헤헤거리면서도 겨울은 생각하지 않았다. 언젠가 겨울이 온다는 것을 잊고 살다 찬바람 불어야 정신이 바짝 든다.
누구에게나 겨울은 찾아온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 나는 길고 긴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다. 혼자만의 동굴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이 기온이 오르고, 꽃망울들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나는 여전히 춥고 고되다. 나만 겨울을 잡고 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겨울은 찾아온다. 다만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내 눈에 그들은 언제나 꽃밭에서만 노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그들은 한여름에 바닷속에서 물장구치는 철없는 사람인 줄만 알았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늘어진 열매를 따 먹고 부른 배 두들기며 띵까띵까 노래 부르는 한량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내 겨울이 유독 춥고 고됐다. 나만 춥고 시리고 아픈 것 같아 속이 쓰렸다. 속상하다 배 아프고, 속이 좁은 내가 또 싫어서 토라지고 외면하며 더 깊이 동굴을 파고들었다.
누구에게나 겨울은 찾아온다. 그도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 힘든 겨울을 보낸다. 각자의 방식으로 저마다의 요령을 갖고 눈보라를 피한다. 북서풍 맞으며 걸어갈 때는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밤새 내린 눈은 발자국을 찍어가며 비질을 한다. 그렇게 다들 살아갈 궁리를 한다.
누구에게나 겨울은 찾아온다. 그리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나무의 겨울은 봄에 틔워낼 싹을 위해 이파리를 떨쳐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짝 마른 가지에 손톱만 한 싹이 돋아나면 눈물먼저 난다. 저 작은 싹은 어디서 나와서 얼마나 커지려나. 고생했다. 고생했어. 장하다. 대견하다. 쓰다듬으면 내일 손가락만큼 자라나 있다.
누구에게나 겨울은 찾아오지만, 영원히 계속되는 겨울은 없다. 봄이 오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야 한다. 할 때가 되면 하는 것이다. 뭐든 때에 맞춰하다 보면 뭐라도 된다. 그것을 모르고 나 혼자만 겨울 속에 갇혀 살 뻔했다.
저마다의 겨울을 이겨낸 사람들이 봄맞이를 하고 있다. 슬그머니 그들 틈에 끼어든다. 살랑거리는 봄치마를 입고, 언제 추위에 떨었냐는 듯이 시치미를 뗀다. 당신도 나도 겨울을 견뎌낸 사람이다. 하고 싶은 말은 묻어둔 채 서로를 바라본다. 대견하다. 기특하다. 생각하며 웃는다. 환하게 봄꽃처럼 활짝 웃는다. 우리는 겨울을 견뎌낸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