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동네 친구들 모임에 꼬박꼬박 회비를 내지만, 정작 참석하는 것은 일 년에 한두 번이다. 가끔 입바른 소리를 하는 친구가 혼자만 바쁜가? 나도 바쁜데 나오는 거다라며 투덜거리는 소리를 하지만, 그녀를 알고 있는 나는 그러려니 한다. 그저 그녀가 아프지 않기를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재미나게 살기를 바란다.
그녀는 아들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홀로 계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늘 바쁘다. 아이들에게 두둑한 용돈을 주는 것으로 아빠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떠올리면 고군분투라는 단어가 따라온다. 연년생 아들을 낳고 기른 그녀에게 어느 한순간도 호락호락한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 모습 그대로 50이 되었다. 웃으면 주름지는 눈가는 이효리의 눈웃음을 닮았다. 예쁘다는 말을 하면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눈가의 기미를 가리킨다. 함께 나이 드는 벗이 있다는 것은 묘한 안도감을 준다. 그녀의 주름진 얼굴은 진심으로 아름답다.
그녀는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얼굴 보는 게 힘들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그녀의 아이가 어렸을 때는 자주 만났다. 그때 나는 아이가 없었고, 그녀는 말동무가 필요했다. 집에서 갓난아이를 키우며 시아버지의 삼시 세 끼를 차려주는 것은 그녀의 입을 통하지 않아도 힘들 것이 뻔했지만, 그녀는 한 번도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그때그때의 에피소드를 풀어놓을 뿐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글씨가 예쁘고 만들기도 잘했다. 그녀의 손은 고운 얼굴과는 다르게 거칠고 두꺼웠다. 그녀가 투박한 손으로 써 내려간 글은 아름다웠다. 그녀의 글솜씨를 알아본 동네꽃집 사장님은 그녀에게 아르바트를 권했다. 그녀는 예쁜 꽃다발에 문구를 집어넣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감사할 일이 많은 5월에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가끔 그녀가 걱정될 때가 있다. 작고 여린 그녀가 일에 치여 아프지는 않을까?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한다는 그녀를 안쓰러워했다. 남편이 주는 돈으로 편하게 살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하며 동네친구들은 그녀를 동정 아닌 동정의 눈으로 쳐다봤다.
그녀는 늘 괜찮다고 말했다.
밥을 적게 먹으니 살이 찌지 않아서 좋고,
몸을 쉬지 않고 움직이니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꽃을 만지니 그 또한 호강이고,
몸이 바빠서 아이들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더니
형제가 의지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아도 알게 됐다고 좋아했다.
혼내서 야단칠 시간이 없어서
좋은 엄마소리를 듣는다고 했을 때는
고개를 끄덕였다.
힘든 일을 힘들게 받아들이지 않는 그녀의 긍정적 태도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늘 궁금했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 같아.
그녀가 내 마음을 알았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촌에 사는 아이들이 그렇듯 그녀 또한 공부하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합법적인 장소일 뿐이었다. 그녀 역시 토요일 저녁이면 일요일에 비가 오길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농사일이란 고되고 힘들었고, 인부를 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던 때여서 그때의 아이들은 눈만 뜨면 밭에 가서 일을 했다.
-그때에 비하면 양반이지.
그녀는 종종 과거의 힘듦을 끌어와 현재를 살아간다. 어렵고 힘들 게 살던 시절이 있어 지금을 견뎌낼 힘이 난다. 타인의 눈에 비친 그녀의 삶이 어떤지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단지 눈앞에 할 일만 하면서 사는 거야.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그녀가 보고픈데 그녀는 일터에서 나올 수가 없으니 아쉬운 내가 찾아갔다. 잠깐 짬을 내서 얼굴을 본다. 그리고 다시 그녀는 일에 눈을 돌린다. 나는 그녀가 없는 공간에 혼자 남아 창밖을 보며 그녀를 생각했다.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구나.
매일 뜨거운 김을 내뿜는 솥뚜껑을 열고 닫으며,
그녀는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모임 때 얼굴이나 보자는 말을 함부로 했구나.
눈을 떼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도 그것 중 하나다.
불은 성질이 급하다.
붙이기는 어렵지만, 한 번 불이 붙으면 무섭게 타오른다.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뻗어가는 불을 잡으려면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불길이 세면, 부지깽이로 불을 흐트러놓고,
잦아드는 것 같으면 장작을 놓아 불을 살린다.
솥뚜껑을 열어 수시로 솥 안을 확인하는 것도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불을 보다 보면 불길에 정신을 뺏길 수도 있다.
불을 때는 것은 밖으로 나오려는 불을 나오지 못하게 지켜 앉아 있는 것이다.
그걸 하고 있으니 그녀는 늘 바쁠 수밖에 없다.
불을 조절하며 그녀는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글을 쓴다며 담요를 뒤집어쓰고 방구석에서 나오지 않으며
힘들다고 징징대는 나는 정작 만들 수 없는 것을 그녀가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거친 것만 보았지 그 손으로 만들어낸 아름다운 것은 보지 못했다.
주름지고, 굵어진 손을 보며 안타까워만 했다.
불을 때지 못하면서 솥뚜껑을 열어볼 용기도 지혜도 없으면서
편하게 사는 게 그저 좋은 줄 알고,
감히 그녀의 삶을 고단하다 속단하고
그녀가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속없이 내뱉었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 인사를 전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여기 참 좋다. 자주 올게.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26년의 첫날, 어느 한 순간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