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하루키가 사랑한 작가

by 레마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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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리고 마음이 여렸던 시절 아버지가 나에게 충고해 주신 말씀이 있는데, 나는 그 말씀을 줄곧 마음속에 되뇌며 살아왔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이 점을 먼저 생각하거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그런 유리한 위치에 있지는 못했다는 걸 말이야."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이 없었지만 우리 부자는 이상할 만큼 무언중에 의사가 통했고, 나는 아버지의 그런 침묵 속에 더 많은 의미가 들어 있음을 이해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떤 일 앞에서 모든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처음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난 건 대학교1학년 봄이었다. 입학식의 설렘이 지나가고, 어리숙한 신입생의 때가 조금씩 벗겨지면서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그것은 거짓말 같은 사랑이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강렬하고 아팠다. 세계명작전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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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키에 빠진 나는 지금까지 하루키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책을 사 모으는 열혈독자가 되었다. 비록 그가 우리 엄마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언제부턴가 그 내용이 그 내용 같을 때도 있었지만 하루키는 나에게 그냥 하루키 그 자체였다. 나는 하루키를 통해 사랑과 이별을 배우고, 음악을 들었고, 책을 소개받았다. 하루키의 말해주는 대로 스파게티를 끓여 먹었고, 하루키가 입은 옷을 찾아 입었다. 하루키처럼 생각하고, 하루키처럼 글을 썼다.



나는 마음이 내키면 책꽂이에서 <위대한 게츠비>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는, 그 부분을 오랫동안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실망을 준 적이 없었다. 단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가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멋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중략 -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남자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군." -상실의 시대 中 -


하루키의 장편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던 책만 몇 번씩 읽던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위대한 개츠비>였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혹은 어울릴 생각이 없는 주인공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을 때, 잘 나가는 학교 선배인 나가사와가 다가와 말을 건다.


나가사와의 입을 통해 하루키는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길래 하루키가 이렇게 극찬하는 걸까? 순수하게 하루키를 좋아하는 마음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뭐든 빠지면 적당히가 없는 나는 세 번이 아니라 네 번, 다섯 번을 읽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콧 피츠제럴드에 푹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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