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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Oct 02. 2020

항상 이분법적으로 살았다

어릴 적부터 항상 정답을 찾아다녔던 거 같다. 모든 일에는 대부분 정답이란 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항상 빚에 시달린다면 소비를 줄이면 되는 것이고, 몸이 아프다면 운동이나 과식을 하지 않는 등, 어떤 사건이 있다면 그에 대한 정답은 항상 존재하지만 문제는 그 정답을 실천하지 않는데서 온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은 능력을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은 재능이 있으니까, 저 사람은 노력을 하니까 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했다. 죽을 정도로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을 보기도 했는데 어찌보면 우리는 그런 경험을 1번이상은 하는거 같다(시험이라든가). 재능을 탓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될 때 재능을 생각해본 적은 있다. 혹은 노력을 생각하거나.


노력에도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노력을 아예 안 하는 사람에게는 노력을 하라는 말이 먼저다. 하지만 노력을 하는 것도 어떤 지향점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아는 동생에게 했던 말중 하나인 '배를 타고 섬을 건너가야 할 때 배가 빙빙 도는지 모르고 계속 노를 저으면 나만 지칠 뿐이야. 나침반이 필요해'이란 말은 그때 배움으로 알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물론 건강이 좋지 않다면 운동을, 지식이 필요하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하지 않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how인 거 같다. how가 없이 why와 what만 있다 보니 그게 내게 맞는 정답이 되지 못하며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기 계발 서적, 특히 습관 관련 서적을 보면 what과 why보단 how를 더 많이 설명한다. 미리 식단을 짜둔다거나, A라는 행동이 떠오를 때 B라는 행동을 하라는 등 구체적인 제안을 준다. 그 상황은 이분법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가능성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서 나온다.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는 것은 이분법적 일지 몰라도 적어도 그 전 단계까지는 모두 가능성으로 검토해야 한다.



최근에 보고 있는 책인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에서는 이런 질문을 한다.


리더가 시대를 만드는가, 아니면 시대가 리더를 소환하는가?


나는 이제 이것을 둘 다 상황에 따라 다르며 서로 유기적으로 엮여있다고 말한다.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것이 다르고, 쓰이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는 단 1개의 능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다만 그중 특출난 능력, 혹은 한두개의 능력으로 돈벌이를 해내며 그래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능력이 한두개로 좁혀져 인지편향이 일어난다. 그 능력이 전부인것처럼 혹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취생이 동네 음식점보다 요리를 더 잘할수도 있는 거고,  은행에서 상담해주는 사람보다 금융상품을 더 잘 알수도 있다. 지금시대는 이전과 달리 잘하고 못하고의 이분법적 모습보단 어떤 환경에서 가진 능력중 무엇을 활용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분법적인 생각은 성사여부를 넘어 가능성마저도 스스로 묵살시켰다.


혼돈의 시대에는 정답이 없다. 기술도 문화도 급격히 변하는 지금은 분명 혼돈의 시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점검하고, 변화에 잘 대응하기 위해 생각, 가치관을 바꾸고 조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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