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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Nov 27. 2020

내 자유는 누가 앗아가나

우리는 타임라인에 따라 계획을 짜는 게 익숙하다. 아마 기원을 따라 올라가 보면 초등학교 때 그리는 방학 동안의 계획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어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정하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공부를 한다고 그리는. 시간을 기반으로 한 계획표 짜기는 이때부터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반복적인 생활패턴이 있다. 누군가는 12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나 아침을 시작하는 반면 누군가는 10시에 자고 4시에 일어나 아침을 시작한다. 누군가는 아침을 먹는 게 일상인 반면 누군가는 아침을 거르는 게 일상이다. 저마다의 활동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그렇게 사는 게 익숙하다.


그런데 종종 이 시간이라는 것이 나를 갉아먹는다. 가령 불면증이 있는 경우 그렇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새벽 1시까지 잠이 안 올 때, 빨리 자야 한다는 더 큰 불안감이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그 불안감이 나를 더욱 잠 못 들게 한다. 그 베이스는 모두 시간이다. 이 시간엔 빨리 자야 하는데 라는 강박이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든다.


시간은 절대적인 수치다. 누구나 시계를 볼 땐 같은 기준의 시간을 보고 이야기한다. 저마다 시간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만 조직 생활, 단체 생활일 때의 시간의 역할은 기준점이 된다. 


만약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밤늦게까지 잠 못 들지 못한 것에 그렇게 심한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 것이다. 7시에 일어나든 9시에 일어나든 특별한 약속이 없다면 전혀 관계없기 때문이다. 주말이 편한 이유는 그런 시간 구애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에 회사나 학교로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간 해방감이 주는 자유가 달콤하다.


시간은 기준점을 제시한다. 몇 시까지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 몇 시까지 일을 끝마쳐야 하는 것 등 그런 걸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만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시간 구속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면 기대 이상으로 정신건강에 좋다.


얼마 전 새벽에 잠에서 깬 적이 있다. 전날 저녁에 먹은 커피에 카페인이 과했는지 새벽에 뜬눈으로 몇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잠자기를 포기했다. 그 과정은 너무나 괴로웠다. 빨리 잠들지 않으면 다음날 일 효율은 물론이고 온몸이 아플 것은 말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나를 더욱 괴롭혔고, 눈은 감았지만 온갖 불안에 휩싸이면서 한 시간을 침대 위에서 뒹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미리 자 두어야 한다는 생각, 잠을 자지 못하면 내 인생이 망가질 거란 생각이 오히려 나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카페인이 원인이 되어 잠못들긴 했지만 잠에 들지 못하면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었다. 예를 들면 혼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 책 보기, 글쓰기, 공부하기 등 매번 시간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냥 하면 되었다. 그럼에도 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자기 암시를 과하게 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그날은 매우 피곤한 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효율이 무조건적으로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잠에서 깬 바람에 해야 했던 일들을 미리 해두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시간 동안 잠을 자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계속 침대에서 뒤척였다면 나는 일도 몸도 마음도 모두 망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강박에 벗어나 할 일을 하니 적어도 일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나를 옮아 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나 스스로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해야 한다고 철떡 같이 믿는 것, 그것 외엔 도저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그런 강박들이 나의 자유를 앗아간다. 하지만 인생이란 0과 1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다양한 선택지들이 존재한다. 그중에 내 상황에 맞는 선택지를 고르고 결정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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