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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Dec 12. 2020

좋은 상사를 만나려면 이직이 답일까

경험적으로 안 사실이지만 확실하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좋은 상사, 사수를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상사란 나를 성장시켜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최근 채용 관련 스타트업에서 사수, 부사수에 대한 투표가 있었는데 혼자서 한다는 사람이 생각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혼자 독학으로 하다 보면, 혹은 팀에 혼자서 일을 담당하다 보면 이걸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 해서 다른데 물어볼 곳도 없고 오롯이 혼자 고민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의심이 든다. 그럴 때 물어볼 사람이라도 있다면 한결 나을 텐데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도 적잖다. 좋은 회사에 가면 좋은 상사와 동료들이 있으니 나를 더욱 성장시켜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거의 실패로 끝난다. 왜냐하면 좋은 상사라는 것은 겪어봐야지만 아는 것이지 좋은 회사에 간다고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와 맞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좋은 상사를 만나기 위해 이직을 한다는 말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모험을 떠나는 것과 같다. 반면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달리 보일 것이다. 좋은 상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일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잘하고 못하고 가 갈린다. 대부분 상사는 일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어긋나거나 삐끗한 일이라 하더라도 일에 대한 태도를 보며 그 사람의 가능성을 갸늠한다. 때론 일을 툭툭 던지듯 준다. 이때 어떤 태도냐에 따라 그 사람이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를 어느 정도 갸늠한다. 일을 불편해하는 사람, 자기 할 일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그러면 일을 적당한 수준으로 준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사람에겐 매번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일을 준다. 해내면 '어라 이것 봐라'식으로 한 단계 높은걸 준다.


즉 내가 어떤 피드백을 하느냐에 따라 나에게 맞는 일, 혹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만한 일을 던져준다. 혹은 감당하지 못할걸 알면서도 주기도 한다. 그리고 관찰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위기를 어떻게 해쳐나가는 것인지, 어떤 관점으로 일을 대하고 어느 정도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이런 태도는 스스로가 컨트롤 가능하다. 반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순전히 운의 영역이다. 만약 둘 중 무엇을 선택하는 게 낫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전자다. 전자는 주체성을 가질 수 있지만 후자는 로또가 당첨되길 바라는 마음과 같기 때문이다.


때문에 좋은 상사를 만나기 이전에 상사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내가 적절한 피드백을 하는가도 점검해보는 게 좋다. 아무리 좋은 상사라 하더라도 따라오지 않는다면 결국 서로에겐 나쁜 사람, 불편한 사람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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