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대두가 되면서 이전과 다른 방식이 각광받으며 창의성이 본격 거론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스티브 잡스 + 알파고의 충격으로 더욱 가속화 된 걸로 기억한다. 동시에 창의성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인문학이 뜨게 되었으며 관련된 다양한 책과 강의가 나왔다. 창의성은 앞으로도 매우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인류 역사상 창의성이 중요하지 않은 타이밍은 없었다. 다만 중요하게 다루는 체감이 크고 낮았을 뿐이다. 전쟁, 나라 경영, 기술, 발전 등 어느 하나 창의성이 빠지고서 성장한 곳은 없다. 창의성은 4차 산업 혁명이라든가 AI라든가 하는 특별한 주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항상 필요한 능력이었다. 모방형 인재가 필요했던 시절에서 조차도 창의적으로 모방하는 게 중요했지 무턱대고 따라하는게 중요하진 않았다. 그렇게 하다 망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창의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정말 인문학을 공부하면 창의성이 튀어나오는 걸까? 안타깝지만 인문학과 창의성은 필요조건에는 들어갈 순 있어도 직접 영향을 미치는 조건이라 보기 어렵다. 책을 많이 읽으면 다양한 사례를 다각도로 해석하는 능력이 길러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 능력을 창의성이 발휘해야 할 곳에 쓰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창의성이 왜 필요한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간단하게 줄여보면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되는 것이다. 무엇에 의한 대체 불가능한 인재를 말하는 걸까? 기계라든가 AI 등에 의해 내가 가진 위치를 뺏기지 않는 걸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내 일을 '정말로' 잘하고 있는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이다. 무작정 잘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과 구체적으로 잘하고 싶은 부분을 선정하는 건 다른 노력을 요구한다. 같은 시간을 투자해도 효율은 후자가 훨씬 좋다. 상황에 맞는 노력을 적합하게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창의성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가치를 이끌어 내는지 명확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즉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해야 기준이 선다. 그 과정에서 이전보다 훨씬 뛰어난, 효율적인 방법을 창안해 내는 것, 창의성이란 이런 곳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때문에 창의력이라 하더라도 다 같은 창의력이 아니다. 최적화 능력, 장단점과 상성을 현장에 빗대어 목표에 달성하는데 가장 적합한 형태를 만드는 것이 바로 창의성이 필요한 이유라 할 수 있겠다. 때문에 나는 앞으로 창의성을 기른다는 말 대신 적합성에 더 강화하기로 했다. 창의성은 내가 바라는 바를 이루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
창의적 인간이 되고 싶은가? 그럼 어떤 분야에서 창의적 인간이 되고 싶은지를 반드시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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