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생각이나 편견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 잘못된 생각과 관념으로 대상을 잘못 판단하는 오류를 범치 말라는 조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조언은 굉장히 중요하다. 다른 예로 책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 단 한 권의 책만 읽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말하곤 하는데, 단 하나의 생각과 사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타인의 생각이나 다른 관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을 경계하란 의미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그런 사람인지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그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나름 다양한 책을 읽고 학습했다 생각했지만 막상 판단하는 상황이 오면 편협한 시야에 갇혔기 때문이다. 사후검증과 반성을 한다고 했지만 실수를 반복할 때면 자책하게 되곤 한다. 무언가 바꾸는 것은 어렵고, 생각을 바꾸는 건 더 어렵다.
현실과 생각에 대한 괴리율은 반드시 존재한다. 분야나 상황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리를 취하는 사람은 자기의 생각과 현실의 괴리를 최대한 줄인 사람이 가져간다. 대표적으로 자산시장이 그렇다. 주가가 폭락할 때 그 기업에 대해 충분히 알고있는 사람은 이것이 싸다고 매수하는 반면, 무서워서 손도 못 대는 사람이 있다. 주가가 폭등하면 이것은 잘못된 가치 측정이야 라며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하고 달려든다. 생각과 현실의 관계를 좁히지 못해 발생한 오류라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왜 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라고 말하는 걸까? 기준이 없으면 비교할 수 없다. 내 생각이 명확하고 온전하지 않으면 현실을 보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리는 이야기에 따라가기 바쁘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어떤 풍파가 와도 잘 견뎌내지만, 뿌리가 작은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린다. 나만의 언어를 가꾼다는 것은 뿌리를 깊게 내리는 행위와 같다.
뿌리가 잘못 깊이 박히면 편견을 갖게 되지만, 뿌리가 깊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편견을 갖는 건 아니다. 즉 둘은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들이다. 오히려 나만의 생각이나 관념이 없는 사람일수록 편견을 갖기 쉽다. 스스로 생각이 깊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 나에게 하는 달콤한 말을 철썩같이 믿기 때문이다.
기록을 잘할수록 반성도 잘할 수 있는 것처럼 나만의 언어가 있어야 나의 어떤 점이 잘되고 있고 잘못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만의 언어를 만들고 성장시키자. 그 언어가 올바로 설수록 세상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게 더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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