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가치라는 것이 참 어렵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한 인정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있을 때는 가치 있는 것을 따질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다 중요하고 가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과의 교점이 생기게 되면 어떤 유용성을 판별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타인에게 어떤 의미 있는 것을 줄 수 있느냐가 가치가 되는 것이지, 내가 배고파 밥을 먹는 행위가 타인에게 가치가 될 순 없는 것처럼 말이다.
가치주기 이전에 이해득실을 먼저 따지는 사람이 있다. 물론 이해득실을 명확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불필요한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종 돈보다 이타심이 더 중요한 경우가 있다. 아니 더 많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개선 요청이 왔는데 비용이 100만 원으로 측정되었다. 내 생각에 그 비용은 300만 원인데 100만 원이라고 하면 거절이나 수락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정이 있어하기로 하기로 했다면 그다음은 이것을 어떻게 더 잘할 것인지, 어떤 가치를 주어 상대방을 만족하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지 100만 원을 줬으니 '이것만큼만 일해야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는 양쪽 모두에 문제를 만든다. 문제를 의뢰한 사람은 100만 원에 의뢰를 했으니 그 일이 잘 마무리될 거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상대방은 내가 돈을 덜 받았으니 최소한의 일만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일이 원활히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일일수록 그렇다. 클라이언트가 제대로 알지 못해 중간에 수정 요청이라도 하게 되면 이건 롤을 벗어난다며 거절할 것이다. 그렇게 몇 번 오가게 되면 결국 아무도 만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이 마무리된다. 당연히 일의 퀄리티도 떨어져 있다.
상대방과의 동의하에 무언가를 하기로 선택했다면 그것을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게 좋다. 차라리 거절을 했더라면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 것인데, 하겠다고 안심시켜놓고 제대로 하지도 않는다면 상대에 대한 평판과 신뢰 모두를 잃기 때문이다.
이 시절에 다른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음에도 왜 이 종이봉투 장사만은 유일하게 성공했을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퍼뜩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전까지 실패했던 모든 일은 나만의 이득과 안위, 혹은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사심에서 출발한 일이었다.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행한 일들은 모두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내가 아닌 가족을 지키겠다는 마음, 즉 이타심에서 출발한 종이봉투 장사만큼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즉, 그 일에는 ‘선한 동기’가 있었던 것이다. - <왜 리더인가>
회사에서 주는 만큼 일하는 게 위험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것과 이것의 공통점은 신뢰, 평판, 그리고 태도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는 잘할 수 있어, 기회만 되고 충분한 보상만 주어진다면'이라는 조건을 항시 달고 있다면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신뢰라는 것은 내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타인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가치를 제공했느냐에 따라 점점 쌓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기로 선택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니면 애초에 거절하는 게 옳다. 하기로 선택했다면 이타심을 갖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여 좀 더 도와 주겠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는게 좋다. 물론 지나친 요구로 인한 열정 페이는 거절하는 게 맞지만 그런 것 역시 스스로가 어느 정도 해보면서 완급조절을 할 수 있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지나친 요구사항이 아니라면 상대방에 대한 입장을 이해하고 도움을 준다고 생각으로 임하는 게 나중에 더 큰 가치를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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