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계에 부딪힌다. 내 경우도 다양하게 경험했다. 한계에 부딪힐 때, 그래서 더 이상 노력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낄 때 좌절을 하기도 했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 인가하며 탄식한 적도 있다. 마음이 꺾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좌절감은 마음을 무르게 만들고, 무른 마음은 포기를 하게 한다. 그동안 아무리 열심히 했더라도 말이다.
한계를 부딪히면 주어진 환경을 탓하게 된다. 집이 좀 더 부자라면, 머리가 좀 더 똑똑했더라면, 어릴 때부터 과외를 받아 좋은 대학에 갔더라면 등 다양하다. 여기에 공통점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핑계를 붙인다는 점이다. 집안이 부자인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다. 머리가 똑똑해지는 것도, 집에서 충분한 서포트를 해주는 것 역시도 내가 어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흥미롭게도, 핑계를 대는 사람의 공통점은 자기의 노력이나 부족함을 부각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둔다는 것이다.
조나단이 물속에 잠길 때, 그의 내면에서 묘하게 헛헛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길은 없어. 나는 갈매기야. 나는 한계를 많이 가지고 태어났어. 내가 비행에 대해 많이 알 운명이라면 이해력이 좋았겠지. 내가 빠른 속도로 날 운명이라면 매처럼 날개가 짧고 물고기가 아니라 쥐를 먹고살았을 거라고. 아버지 말씀이 옳았어. 이 엉뚱한 짓은 집어치워야 해. 집으로, 갈매기 무리에게 날아가서 이대로 만족하면서 살아야 해. 한계가 많은 처량한 갈매기로. - <갈매기의 꿈>
환경을 탓하면 당장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다. 그런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겨낼 수 없다. 꼭 이겨내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기지 못한 시련은 평생을 쫓아다니며 나를 괴롭힌다. 극복하지 못했기에 비슷한 수준의 문제가 오면 언제든 부딪히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반복 패턴을 보이는 것이다. 즉 한계를 인정하되,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를 관찰하고, 도전하고,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만약 조나단이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갈매기들과 같은 삶을 살기로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갈매기가, 스스로가 원하는 모습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계는 시련을 동반하며 시련을 극복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모습에 조금씩 닮아가게 된다. 반대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성장시키지 못하면서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에 가깝다. 어릴 때 수많은 꿈을 가진 우리가 성인이 돼서 꿈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스스로를 한계라는 틀에 가둬두었기 때문이다.
성인이기에, 세상을 배우면서 꿈을 잃는 게 아니다. 내가 나를 포기했을 때 꿈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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