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게 명령 하복을 당해본 경험, 갑 회사로부터 갑질을 당해본 경험은 사회에 나가보면 언젠간 반드시 한 번쯤은 겪게 되는 현상이다. 그럴 때마다 불합리함과 불공정성에 치가 떨리며 상대방에 대한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갑질이라니'라는 생각이 들며 분노하다가도 이게 현실이라며 받아들이곤 한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 더 잘 나가는 사람, 더 잘 나가는 기업에게 좌절당한다.
그러나 대기업이라고 영원하지 않는다. 미국의 100년 전 top 100 기업과 지금의 top 100 기업을 비교했을 때 지금까지 살아있는 기업은 기껏해야 2~3개 정도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80~90년대 한때 시대를 호령했던 회사의 상당수가 사라졌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상사는 영원히 상사일 거 같지만 회사를 나오면 상대방은 더 이상 나의 상사가 아니다. 어릴 적 부모님은 언제나 커 보이지만 나이를 먹다 보면 어느새 역전됨을 눈치채게 된다.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것에도 끝이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순간의 고통이 크면 그 순간이 영원할 거 같다는 착각에 상황을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해석한다. 그러나 역전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 상황을 이겨내고 꾸준히 정진하고 있다면 말이다.
흙수저는 금수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금수저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덩치가 큰 코끼리나 기린은 한번 주저앉으면 일어나기가 어렵다. 반면 여우는 그사이에 열 번도 더 뛰어다닐 수 있다. 차별적 변화를 찾아 빨리 움직이는 것은 약자만의 장점이다. 아무리 힘이 센 남자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윗옷을 벗어던지며 달려드는 남자와 싸워 이길 수 없다. - <돈의 속성>
아무리 상대방이 강하다 하더라도, 혹은 넘어야 할 산이 크더라도 매일매일 조금씩 오른다면 언젠간 오를 수 있다. 극복할 것인지 주저앉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이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
주저앉을 것인가 이겨내 승자가 될 것인가. 마치 메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 약 사이를 고르는 것 같지만 실로 답은 간단하다. 나 자신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 맛집을 찾아가고 기꺼이 비싼돈을 지불하며 좋은 음식을 찾아 먹이는 것처럼 스스로의 삶을 더 좋게 가꾸기 위해 기꺼이 좋은 선택을 하는 게 좋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있다. 다만 지금 순간의 힘듬, 귀찮음, 편리함 때문에 미뤄둘 뿐이다.
올바른 선택은 올바른 마음에서 나온다. 올바른 마음은 나를 목표한 곳으로 이끈다. 이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한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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