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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무통 LeMouton Feb 02. 2024

[르무통 X 제주] 그리울 때는 섬으로 가자

곽지해변 - 한담해안산책로 - 장한철 생가 - 애월 카페 거리 - 애월



휴대전화 벨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창밖은 이미 환하게 밝아 있었다. 


 “여보세요?”


그러나 휴대전화 저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조금 정신을 가다듬고 한 번 더 불러 보았지만 여전히 침묵이었다. 시를 쓰는 선배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아마도 버튼이 자동으로 눌러진 것 같았다. 잡음만 들리는 휴대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미세하지만 청명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잡음이 아니라 파도 소리였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고 다시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면서 만들어내는 맑은 물소리.


“예쁜 파도 소리 듣고 좋은 하루 시작하라고…….”

“어디예요?”

“파도 소리 들리지?”

“어디냐고요?”

“안녕."

뚜~ 뚜~ 뚜~ 


선배는 나의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날 나는 배낭을 꾸리고 섬으로 떠났다. 휴대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던 파도 소리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휴대전화가 아니라 실제 발아래서 찰랑대는 파도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때 나는 서른을 막 넘긴 때였고, 돌아보면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을 때였으니까.

살면서 문득 섬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건 떠날 때가 되었다는 증거다. 섬의 하늘과 섬의 바람과 섬의 바다는 뭍의 것과는 다르다. 파도 소리까지도. 뭍과 멀리 떨어져 그 긴 세월을 철저히 혼자 버텨낸 섬이니 당연한 일이다.


곽지해변에서 남긴 소중한 추억 한 장


해녀들의 삶을 간직한 곽지 해변   

곽지(郭支)의 지명에 대한 유래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마을 안 여러 곳에 잣(잔돌로 쌓아 놓은 곳)들이 많아 곽기리(郭岐里)라고 하였다가 곽지리(郭支里)로 바뀌었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곽지 해변의 모래는 조개껍데기가 오랜 기간 퇴적하고 풍화되어 쌓인 결과물이다. 맑고 곱다. 제주의 모든 바다가 예쁘지만, 특히 여행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이유다. 곽지 해변 한복판에는 뜻밖에도 노천탕이 자리하고 있다. 이름은 ‘과물 노천탕’이다. 남탕과 여탕이 나뉘어 있으며 밖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도록 높은 돌담이 둘려 있다.

내부로 들어서면 바닥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 바닷물이 아니다. 물맛도 좋기로 소문나 있다.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식수로 사용했으며 가뭄에는 이웃 마을에서도 이곳 물을 운반해서 식수로 사용했다. 노천탕 앞에는 해녀상들이 여럿 세워져 있는데, 하나같이 물허벅을 지고 있다. 당시를 묘사한 조각상들이다. 1960년대 상수도가 설치될 때까지 마을의 중요한 식수원이었으나 지금은 여름 피서객들의 피서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아름다운 곽지 해변을 좌측에 끼고 애월 방향으로 걷는 길은 일명 ‘곽지 잠녀의 길’이라고도 불린다. 지금은 여행자들의 길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마을에 거주하던 해녀들이 물질을 하러 다니던 작은 길이었기 때문이다. 잠녀는 해녀를 일컫는 제주어이다.

타원형 곽지 해변을 모두 벗어나면 본격적으로 도보전용 코스로 접어든다. 바닥에는 잘 다듬어진 현무암들이 깔려 있다. 도시의 보도블록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 실제 곽지~애월 해안길을 걷는 여행자 중에 바퀴가 달린 여행용 케리어를 끌고 이동하는 여행자를 만날 수도 있다. 숙소 체크아웃 후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 전 해안길을 산책하는 여행자들이다.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해녀 조각상 / 반짝이는 해변을 따라 걷기 with 르무통 버디(다크네이비)


예쁜 카페들의 천국, 애월 해변

곽지 해변에서 애월에 이르는 길은 그야말로 파라다이스다. 발을 담그면 금방이라도 물들 듯한 쪽빛 바다와 잔잔한 파도 소리가 내내 함께한다. 언덕 위에서는 종종 키 큰 야자수들이 내려다보기도 한다.

구불구불한 해안길을 몇 번 돌고 나면 저만치 애월 해변이 보인다. 곽지와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 애월은 개성 넘치는 카페가 가득하다. 애월에 처음부터 카페가 많았던 건 아니다.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던 작고 아담한 카페들 몇이 있었지만 여행자가 늘면서 카페도 늘었고, 카페가 늘면서 여행자는 더욱 늘었다. 지금은 제주에서 가장 북적이는 바다 중 하나이다. 

이제는 카페도 여행지가 되었다. 여행지에서 잠시 휴식을 즐기며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아니고 카페에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시대라는 의미이다. 당연히 카페도 하나의 여행 문화로 자리 잡았다. 카페와 카페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새 바다 앞에 다다른다. 애월의 모든 길은 바다로 향하는 느낌이다.애월에는 아주 작은 미니 해변도 있다. 열 명도 들어서기 힘들 정도로 작은 해변이지만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길을 걷다 마주친 풍경에 잠시 멈춰 갖는 드로잉 시간


5개월간의 표류 - 장한철 생가

애월 바다 한복판에는 장한철 생가가 있다. 장한철은 조선의 선비다. 1770년 과거를 보러 배를 타고 제주를 떠났다가 무려 5개월간 표류를 했던 인물이다. 그가 탔던 배는 제주를 출발하자 마자 거대한 고래를 만났다. 고래가 몸을 뒤집으며 배에 물이 차면서 표류를 시작했다. 

이후 전남 소안도와 흑산도를 거쳐 무려 일본 오키나와 열도까지 표류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본토 상륙하게 되었지만 상륙 직전에 또 한 번 태풍이 몰아쳐 선체가 파손되었다. 함께 출발한 21명 중에 8명만 살아남았다.

장한철은 그후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시험을 치렀으나 안타깝게 낙방하였다. 그가 고향 제주로 돌아온 것은 1771년 5월 8일의 일이다. 그는 돌아와서 5개월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바로 표해록(漂海錄)이다. 새드앤딩일 수 있었던 장한철의 표류는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장한철은 4년 후인 1775년 다시 과거시험을 보았고 급제하여 제주 대정현감까지 지냈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한철 생가


애월 해변에서 마을로 올라가면 애월 연대를 만난다. 돌담 사이에는 푸릇한 밭들이 이어진다. 밭에서 자라는 채소 중에는 육지의 밭에서는 보기 힘든 브로콜리도 있다. 돌담 너머의 애월 연대는 해안을 경계하고 감시하며 연변봉수의 기능을 겸하던 시설이다. 애월 연대까지 돌아보면 곽지~애월 해안길 산책은 끝이 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시를 쓰는 선배와 내가 주고받았던 통화는 일종의 오류와 오해였다. 처음에는 통화 버튼이 실수로 눌러졌다고 생각했고, 파도 소리를 들었을 때는 나와 통화까지 주고받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라 일방적으로 파도 소리만 들려주고 전화를 끊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화가 끊긴 후 다시 전화를 걸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제주의 이색적인 브로콜리 밭 /  르무통 버디(다크네이비)와 함께한 달콤한 휴식


그러나 한참 후 알게 되었다. 선배는 나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했다. 통화는 연결이 되었지만 '여보세요?'라고 말하는 나의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전화를 끊지 않고 끝까지 파도 소리를 들려주며 안녕이라는 인사까지 남겼던 선배였다. 아무 대답이 없어서 그저 적막한 동굴 속에 대고 파도 소리를 들려주는 느낌이었다는 선배. 바다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곽지와 애월의 바다를 거닐며 그날의 선배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얼마 전 서울에 올라왔을 때도 보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간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급한 원고 끝나면 한 번 내려와.”


그리고 나는 또 이렇게 대답했다.


“급한 원고가 아니어도 가야죠. 너무 오래도록 보지 못했어요.” 


더 늦기 전에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 그날 우리는 함께 섬으로 갈지도 모른다.


해변 근처의 걷기 좋은 산책 길






[르무통 x 제주] 시리즈 작가 소개

박동식 여행가, 사진가, 에세이스트


카메라를 들고 길을 떠나는 유목여행자다. 

세상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것을 즐기며 때로는 돌아서서 혼자가 되기 위해 애쓴다. 

저서로는 『마지막 여행』 『열병』 『여행자의 편지』 『내 삶에 비겁하지 않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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