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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May 16. 2019

꽃 / 함민복 (ft. 알레고리 환청 주의)

내맘대로 해석하기

꽃 /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사라지더라


1. 알레고리

알레고리의 의미는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기"라고 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동전이 떠오릅니다. 앞면이나 뒷면 중 어느 한 면만을 보여주고 있지만 야누스처럼 이면을 숨긴 이야기. 동물의 삶을 보여주지만 인간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이솝우화가 알레고리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발터 벤야민은 알레고리를 "개별 인간이 상품이 되는 전도된 현실과 근대의 파괴적인 속성을 보여주며 동시에 구원의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어렵게 정의하며, "진보의 진행에서 벗어나 현재의 이 순간에 정지하는 것"을 구원의 방법론으로 제시했다고 합니다. 뜬금없이 알레고리를 언급한 이유입니다. 벤야민의 알레고리 정의와 함민복의 시 [꽃]이 너무도 닮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2. 함민복의 시 꽃. 알레고리를 알레고리하는 알레고리 시.

함민복의 시 [꽃]에서 꽃은 존재의 은유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꽃은 아름다운 생명의 상징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작은 인공화분에 갇혀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담장 위 '흙의 공중섬'에 핀,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도구,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수단, 그리고 흠향(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한 꽃은, 알레고리에 대한 벤야민의 정의처럼 "상품이 된 개별인간"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함민복의 시 [꽃]은 벤야민의 알레고리를 알레고리하는 즉,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기" 하는 알레고리 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3. 알레고리의 목적

위에서 언급했듯이 벤야민은 알레고리의 목적을 "구원의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벤야민의 알레고리를 알레고리하는 함민복의 시 [꽃]은 어떤 구원의 전망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경계를 긋는 일에서 벗어나 현재에 실존하는 일일 것입니다. 마치 각각의 계층과 분별로 칸칸이 분리된 설국열차에서 기차를 세워 옆문을 열고 설원으로 나아가는 것처럼요. 경계가 하나 둘 사라지면 부정적인 의미의 꽃들도 더는 피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결과 이미 피어 있던 '꽃철책이 시들고' 마침내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사라'질 것입니다. 어쩌면 순진한 기대이자 지나친 낙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누군가는 계속 희망하고 시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벤야민의) 알레고리의 목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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