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러(seouler)

에필로그

by LenaMilk

전 세계의 유명 도시들 중에서도 패션 문화 예술 그리고 문학, 무엇보다 세계의 중심이 되는 도시들에 살아가는 사람들 뒤에는 '러/너'가 붙는다. 런더너(londoner), 뉴요커(Newyorker) 그리고 파리지앵(이건 러/네가 아니지만). 런던-뉴욕-파리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도쿄가 세계의 금융 및 문화 중심지로 각광받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세계가 변화하며 이러한 주요 도시 외에도 새롭게 부상하는 도시들이 있으니, 그중 하나가 서울이라 자부한다. 서울의 인구는 대략 940만 이상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각지에서 모여들어 살아가는 것이다. 런던(서울 이외에 살아본 곳이 런던과 옥스퍼드밖에 없다..)보다도 많은 인구수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5년 정도 해외에서 공부를 했던 시간을 제외하면 20년의 훌쩍 넘는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렇기에 서울에서 사는 감사함도 잊은 채 지난 몇 년간 서울에 사는 권태감과 답답함에, 서울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해봤고 서울이 지긋지긋하다며 징징된 지 약 5년의 시간. 그 사이 약 3년의 시간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꼼짝없이 서울에 갇혀 있다 답답하면 한국의 시골을 쏘다니고는 했지만 일 년 365일 중 300일은 서울살이였다. 그래서 서울이 지겹다. 그래도 가끔은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걸 감사히 여기며 나의 처지에 감사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서울 살이는 너무나 익숙하다.


서울의 초 호화 부촌 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꽤 편안히 사는 동네에서 살아왔다. 아직 자가는 없지만 그래도 부모님 집과 새로운 신혼집에서 편안히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신혼집도 남편의 직장과 우리의 기질을 고려해서 서울에서도 가장 힙하고 젊은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모여사는 곳들 중 하나로 정했다. 교통편도 우수하고 주변에 좋은 카페와 식당이 즐비해 있다. 가끔씩, 단 한 가지 내 명의로 된 '내 집'이 아니라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삶의 목표 아닌 목표가 있지만, 너무 먼 미래라 그건 마음 한편으로 넣어두려고 해도 도시를 쏘다니며 으리으리한 집들을 보다 보면 "이렇게 집이 많은데 왜 내 집은 없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코 잊고 살 수는 없는 내 집 장만의 꿈 아닌 꿈, 사실 꿈은 아니다. 내 집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한 군데서만 살고 싶지도 않다. 여기저기 살아보고도 싶다. 하지만 뭔가 사회적 압박감이 있다. 언젠가는 꼭 내 집을 사야만 할 것 같고 , 무엇보다 투자 가치로 전락한 집 장만의 전쟁에 뛰어들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압박감.


어찌 됐건, 서울에 남아있으니 최대한 서울을 즐겨보려고 마음먹은 지 3년 정도 됐을까. 그래도 나의 삶에 감사하며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답한 건 똑같다. 회색 건물들은 여전히 도시의 생동감에 폐를 끼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종로구의 모습도 조금씩 변화해 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뒷골목과 한옥 , 그리고 과거의 때와 흔적을 가장 많이 머물고 있는 곳이지만.. 두렵다. 약 10년 안에 도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허물어지고 매력 하나 없는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한때 살던 런던과 옥스퍼드를 그리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건축과 도시의 이야기 그리고 시간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 이런 도시들은 워커블(walkable)한 도시 계획과 수많은 나무와 공원, 즉 이코 프랜들리(eco friendly)의 도시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처음 옥스퍼드 당일 칠기 여행을 떠났을 때, 도시 중심으로 중세시대 분위기를 풍기는 옛 고성 느낌의 학교 캠퍼스를 보며 정말 충격에 휩싸 였었다. 아무래도 오래된 건물들이다 보니 곳곳에서 보수 공수가 진행 중이지만, 런던과 옥스퍼드의 풍경은 서울의 회색도시와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였다. 런던에 살며 가장 감사했던 것은, 크고 작은 공원이 곳곳에 있다는 것과 어디로 어떻게 걸어도 쌩뚱맞은 건물이 나를 가로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 같이 산전수전 다 겪은 도시도 많지 않지 않을까. 식민지 시대를 겪으며 서구 건축 스타일과 한국의 스타일이 오묘하게 섞였던 시절과, 전쟁으로 초토화된 도시를 재건하던 그 풍경, 급격한 변화를 겪던 격동의 시기에 도시를 재건하며 높은 건물을 지어가는 현재까지. 번쩍번쩍한 도시의 풍경을 보다 보면 순간적으로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아...... 서울이 이 정도까지 발전했구나 싶으면서 우리 이제 진짜 잘 사는구나 싶은. 물론 그것도 빈부격차 안에서 정말 소수만이 누리는 행운이라는 게 문제이지만, 빈부격차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온갖 정치 논리와 사회 구조의 문제를 언급해야 하기 때문에 뒤에서 천천히 얘기해보고 싶은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는 부모님 집이 되어버린, 내가 평생 살아온 동네에서 걷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머니와 장을 보고 열심히 걷던 중 갑자기 생뚱맞은 건물이 앞에 떡! 하니 서있는 게 아닌가. 빨리 갈려면 그 건물을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나가야 했다. 다른 방법이 없던 건 아니다. 그 건물을 통해서 가고 싶지 않으면 멀리멀리 돌아가면 되는 거였다. 고성 같은 멋진 건물이 아니라 그냥 못생긴 회색 건물이었다. 건물주가 누군지, 아니 이렇게 시민이 걸어가는 아니 이곳에 사는 동네 주민의 발길을 멈추는 건물을 짓게 허가한 사람이 누군지 자연스럽게 궁금 해졌다. 정말 생뚱맞은 풍경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건물에 국가 공공기관이나 중요한 회사가 들어선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서울을 생각하며 온갖 감정이 교차한다. 나의 자랑스러운 도시이자, 답답하고 불편한 이곳. 대중교통의 편리함은 있지만 차를 끌고 나오면 온갖 쌍욕이 터져 나오는 이곳(물론 나는 차도 면허도 없지만 운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제는 서울에서 주차를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니, 인구가 미어터지는 이곳, 그래서 생동감이 넘치지만 그 생동감과 대조되는 회색 건물들과 사람들의 찌든 얼굴.

서울에 아픈 사람 죄지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지난 며칠 동안 비가 끊임없이 내렸다. 이렇게 발전한 도시에 아직도 지하와 반지하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서글픈 일이다. 그들이 반지하와 지하에 지불하는 비용으로 조금 더 나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도시 계획과 법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반지하에 살던 가족이 참변을 당했다. 빗물로 인해서. 기가 찰 노릇이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왜 그들이 죽어야 했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또 그 이유를 사회로 들리기 시작하며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조차 모르겠지만 천천히 글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어제, 서울시에서 앞으로 반지하와 지하를 거주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국가차원의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그 밑의 댓글을 읽어보니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거기 살고 싶어서 살겠냐'는 의견들이 많았다. 공감한다. 그들이 거기 살고 싶어서 살겠는가. 하지만, 그들을 지상으로 보내줄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이 있다면 반지하와 지하와 같은 구시대적 주거형태를 허물기 위한 발걸음을 응원한다. 정말 구시대적이다. 사람이 햇빛 하나 들지 않는 반지하와 지하에 살아야 한다니.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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