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발리 에세이를 써 내려가고 있지만, 사실 세상에는 정말 오지를 포함한 세계 곳곳을 다녀온 여행 선배님들이 많기에 나의 여행 경험으로 명함을 내밀기도 부끄럽다. 하지만 워낙 쏘다니는 것을 좋아하기에 꼭 거창한 해외여행이 아니더라도 서울과 한국 그리고 해외를 나름 열심히 쏘다녔다. 앞의 길을 읽은 독자라면 알겠지만, 나는 한 곳에 꽂히면 그것만 먹고 생각하고 하는 편이라, 장소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그곳이 너무 좋다면 그곳을 반복해서 가는 습관이 있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으로, 서울에서는 서울의 역사를 품은 종로구와 마포구, 서대문구와 같은 '옛날 동네'들이 가장 멋스럽다고 생각한다. 물론, 용산구의 서울역 그리고 한남동, 이태원, 녹사평, 그리고 해방촌과 같은 트렌디한 곳들도 많지만 나에게 서울의 최고봉은 종로구이다.
아무래도 결혼을 준비하며 남편의 반지, 어머니 선물, 그리고 내 반지 등 일명 '예물'을 사기 위해 청담동 예물 거리고 종로 예물 거리를 몇 번이나 방문했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나에게 종로는 금과 다이아몬드 및 값비싼 보석을 합리적으로 살 수 있는 보석과도 같은 곳이다. 또한, 종로를 가면 꼭 들러야 하는 광장시장의 분위기와 맛집 그리고 구제시장은 우리 국제 부부에게는 정말 매력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곳이다. 특히, 남편이 매우 좋아하는 곳이기에 나 또한 예전보다 더 애정을 가지고 방문하는 곳이다. 종로 3가와 종로 5 가도 매력적이지만 종각역은 항상 새롭다. 할아버지들의 동네 다방 같은 분위기. 어딜 가도 할아버지들이 가득한 종각역과 종로3가역은 약간은 쓸쓸하면서도 뭉클한 감정이 교차한다. 꼭 독거노인 분들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친구와 가족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보내시는 노인분들이 그곳에서 친구도 만들고 산책도 하고 바람을 쐴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이지만, 한 번씩 할아버지들의 싸움을 구경하다 보면 약간 살벌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재례시장을 매우 좋아해서, 망원동에 위치한 망원 시장과 월드컵 공원 시장도 자주 방문하는 편이다. 서울의 '힙한'시장들을 나열해보면 서촌의 통인시장 그리고 종로의 광장시장이 되겠다, 마포구에 위치한 망원시장은 평일에도 젊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일단 시장의 특성상 맛있는 찐 한식들이 비교적 저렴하다는 것이다. 특히, 망원시장은 이미 조리된 음식들 뿐만 아니라 좋은 수산물, 채소 그리고 정육점들이 즐비해 있다.
대학로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서울에서 연극의 중심지로, 연극과 아르코 미술관의 전시회 그리고 다양한 디저트 가계와 음식점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직도 기억하는 어린날의 기억이 있다. 어머니와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나와 뒤늦게 도착하신 아버지와 라면에 수제비가 들어갔던 음식을 먹었다. 라면에 수제비라, 요즘에도 판매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수제비와 쫄면, 칼국수, 냉면, 라면 등등 면 음식을 좋아하던 입맛인지라 라면에 수제비는 신기하면서도 맛있는 조합이었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배우다 말다 했다. 아무래도 그냥 취미로 배우던 악기나 미술은 동네 학원을 다니며 해결했지만, 이제 정말 대학 전공으로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 입시를 준비하다 보니 홍대 앞 미술학원을 다니게 됐다. 그때 나이 만으로 16, 한국 나이 18살. 그때 당시 홍익대학교 회화과 입시를 준비하던 친척 언니의 영향으로 홍대 앞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고등학교가 4시에서 4시 반에 끝마쳤던 것 같다 그러면 그 길로 지하철을 타고 친구들과 같이 혹은 혼자서 홍대 앞으로 향했다. 홍대에서 가볍게 저녁을 해결하거나 시간이 없으면 굶은 채로 4시간에서 5시간 그림을 그렸다. 그 방식은 한국 입시미술이나 유학을 위한 포트폴리오 학원이나 똑같았다. 그렇게 홍대 앞을 약 3~4년을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대학원도 홍대를 진학했다. 그렇게 다시 3년을 홍대 앞을 자주 가야 할 이유가 환경이 생겼다. 그리고 현재는 홍대 근처에 거주 중이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홍대 근처에 살게 됐다. 그렇다고 홍대 앞을 갈 일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냥 종종 심심하거나 날씨가 좋으면 걸어가기는 하지만, 이제 30대가 되어버린 나에게 10대와 20대들의 성지인 홍대 앞은 약간은 부담스럽기도 웃기기도 하다.
그래도 홍대 앞은 언제나 즐겁다. 젊은 열기와 열정으로 가득하다. 이제 홍대 앞에서 쇼핑을 할 나이와 취향은 지났지만 구경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 대학가 거리다 보니 맛있지만 가격도 착한 음식점들도 꽤나 많다. 물론 팬데믹 기간을 지나면서 몇몇 음식점들이 문을 닫고 심지어 한국 여성들의 쇼핑 천국인 옷집 ZARA가 없어진 것은 충격적이나, 여전히 홍대 앞은 즐겁다. 특히, 대학원 시절 수업과 그다음 수업 사이에 시간이 빌 때마다 먹었던 틈새라면은 여전히 맛있다. 홍대 앞은 나의 10대와 20대로 가득 차 있다. 목동에서도 가까워서 자주 오던 이곳이 이제는 내 이웃이 되어버렸다.
홍대 앞도 홍대 앞이지만, 연남동과 망원동 그리고 합정 상수와 같은 홍대 근처의 동네들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특히, 연남동은 크고 작은 카페들이 많고, 네일 아트 그리고 일대일 헤어 숍, 맛 좋은 카페 및 베이커리가 가득하다. 종종, 힙한 젊은 브랜드들의 쇼룸도 찾을 수 있다. 연남동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연희동이 보인다. 연희동으로 가는 길에 중국 음식점들과 연희동 특유의 큰 집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집을 개조한 큰 카페들, 쇼룸 그리고 찐 한식 맛집들이 은근히 많은 곳이 연희동이다. 하지만, 교통편이 쉽지 않으니 나 같은 뚜벅이들이나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에 부담이 없는 차주들이 오기는 편하나, 지하철이나 버스 노선이 편리한 것은 아니다.
강남을 자주 가진 않지만, 강남구에 거주하는 친구들을 보러 갈 때는 예의상 강남까지 가준다. 사실 강남에서 태어나고 자라거나 20대를 보낸 친구들은 강남에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버릇이 있다. 물론 목동인들도 그렇다. 잠실인들도 그렇다. 주변에 편의시절 및 백화점 쇼핑몰이 있다면 굳이 다른 동네까지 갈 필요가 없기는 하다. 압구정은 언제 가도 조용하고 편안하다. 특히, 압구정 현대백화점과 현대아파트 주위는 약간 목동 아파트 단지를 떠올리게 해서, 심지어 익숙한 느낌까지 든다. 그래도 여전히 강남은 강남이다. 차도 너무 많고 가끔 사람도 너무 많다. 한국에서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 신랑의 대부분이 꼭 거치는 곳은 강남구 청담동. 화려한 부띠크 샵과 비싼 외제차 그리고 드레스 샵과 예물 샵들이 즐비한 거리를 걷다 보면 처음에는 약간의 위압감이 들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냥 아무 감흥이 들지 않는다. 차가 너무 많고 정이 들지 않는 동네 중 하나이다. (지극히 개인적 견해)
한때, 잠실에 살던 친구와 친하게 지내던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런던 유학시절부터 알아온 동갑친구인데, 잠실에 대한 엄청난 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가고싶은 곳이 있지 않는 이상 잠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때 당시도 목동에서 잠실을 가면서 내가 왜 굳이 잠실까지 가야 하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친구를 배려해서 그냥 갔다. 사실 잠실은 내 취향이 아니다. 내가 봐도 살기는 매우 편할 것 같고, 큰 공원과 롯데월드 그리고 맛집들이 즐비하니, 돈만 있다면 살아봐도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여전히 정은 가지 않는다. 여전히 나에게 잠실 = 롯데월드가 있는 곳이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서울역 쪽이 용산구라는 사실을 안 지 1년이 되지 않았다. 용산구 하면 한남동과 이태원 그리고 녹사평, 삼각지만 떠오르는 것이 전부였다. 몇 년 전부터 용산역과 서울역에 힙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예전에 서울역 하면 노숙자분들과 약간은 번잡하고 더러운 곳으로 인식되고는 했지만, 이제는 서울에서 가장 힙한 바와 레스토랑들이 있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그래도 여전히 용산구의 자랑은 고급빌라와 부티크 비싼 와인바와 카페 그리고 하얏트 호텔이 있는 한남동과 녹사평 쪽이 아닐까 싶다.
팬데믹 기간을 지나면서 이태원이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이태원은 이태원이지만, 어쩌면 내가 변한걸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찾은 이태원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도 이태원은 재밌다. 사람 구경하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항상 즐겁다.
이러한 동네가 몇 군데 더 있는데, 을지로와 문래동이다. 문래동은 본가인 목동과 가깝지만 어릴때는 그곳으로 놀러 나가 볼 생각을 해보진 못했었다. 내 첫 직장이 문래동에 있는 갤러리였기에, 문래동을 탐방할 이유가 생겼었다.
문래동을 걷다 보면 '끼이이잉' 하는 철금 속을 다루는 기계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그 사이로 힙하고 맛있는 카페와 베이커리 그리고 가죽 공방, 작은 전시 공간 그리고 술집들이 많이 생겼다. 문래동의 음식들은 대부분 맛있는 듯했다. 특히,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기사식당, 어죽 칼국수집은 아직도 종종 생각난다. 문래동 첫 직장의 본점은 을지로였다. 미술공부를 하며 을지로와 문래 일대에 아주 작은 대안적 공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사실상 을지로에서 전시를 본 적은 없었다. 일 때문에 종종 가게 됐던 을지로는 너무 인상 깊었다. 힙한 갤러리와 카페 그리고 조명 도매, 소매 상점들. 오래된 건물들과 지하철역, 가끔은 차로 미어터지는 거리, 그리고 옛날 통닭집과 반대편의 퓨전 쌀 국숫집. 간판은 없지만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보고 용케 찾아갔더니, 내부는 아주 힙한 인테리어와 특이한 조각 케이크에 매혹된 크롭티를 입은 20대 젊은 세대들이 가득했다.
서울은 다채롭다. 하지만 서울 곳곳을 돌아다녀야지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서울의 강북과 강동 그리고 강남 , 서울의 중심부는 서로 다른 색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내가 반복해서 말하는 것처럼 많은 건물과 도시 풍경이 비슷해져 간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강남은 강남대로 남아있고 강북은 강북대로 옛 시절을 기억하며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연남동과 연희동의 낮은 빌라들과 큰 주택들이 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에 그런 분위기를 가진 곳들이 많지 않으니, 그냥 조금만 더 오래 보수 공사를 거치며 서울의 역사를 보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제2의 고향인 런던과 옥스퍼드는 각기 다른 색을 지닌다. 주로 영국의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영국은 칙칙한 색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나에게 영국은 채도가 낮은 다채로운 무지개 색이다. 어딜 가도 다 다르다. 절대로 지루할 틈이 없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파리를 떠올리면 파란색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날 좋은 여름에만 방문했어서인지, 그냥 청량한 파란색이 떠오른다. 무작정 혼자 떠난 덴마크 코펜하겐은 황토색과 초록색이 섞인 색이다. 그 당시 비가 많이 왔었고, 우산 없이 그 비를 맞으며 걷다 발견한 큰 호수가 있는 공원은 안개 가득했다. 그래도 한쪽으로는 귀여운 집들과 나무가 많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덴마크는 청량한 초록색과 황토색이 섞여있다. 일본은 언제나 오묘한 네온사인과 블랙&화이트가 떠오른다. 도쿄의 네온사인 그리고 도쿄 지방 도시들의 잔잔함과 그레이와 톤 낮은 네이비색이 섞인 집들. 그리고 하얀 집들이 떠오른다. 중국은 정말 잘 모르겠다. 어렵다.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어딜 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냥 모든 게 광활하고 컸던 기억만 있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발리는 축축한 초록색과 와인색이 떠오른다. 발리 여행 내내 볼 수 있던 이름 모를 와인색 열대 꽃이 잔상에 남는다. 동남아이다 보니 축축했다. 공기가 가득 가라앉은 축축함과 안개 가득 낀 하늘, 넓은 호수와 파란 바다 그리고 맑은 하늘, 초록 기운 가득한 산까지. 그냥 자연의 색을 다 모아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