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o, 청룡! 03

단편 소설

by 금사대제

표지 사진: 와인 매장 @ 이마트





와인 할인 행사는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손님을 끌기 위해 마련한 특별 이벤트였다. 그런데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몇몇 와인 브랜드가 원하는 수량만큼 확보되지 않았다.


‘이 능구렁이 같은 놈, 또 수작을 부리는군! 이번에도 납품 단가를 올려 받을 심산인가? 죽일 놈, 골치 꽤나 아프게 생겼네.’


태경은 속으로 거래하고 있는 와인 수입업자를 짓씹으며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아마도 오늘은 매장에 물건을 대는 와인 수입업자를 어르고 달래느라 하루해를 다 보내야 할 판이었다. 모든 거래가 항상 매수자 우위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갑을 관계가 뒤바뀌어 납품업자가 갑질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이 경우가 꼭 그랬다. 고급 프랑스 와인 수입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이 수입업자는 필요한 브랜드 외에 인기 없는 저가 와인 브랜드도 끼워 팔기를 원했다. 태경은 필요한 품목만 매입하고자 했으나 독점의 위력을 잘 아는 수입업자의 태도는 뻣뻣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특별 이벤트 광고가 나갔고 이벤트 개시일 까지는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태경은 크리스마스 특별 이벤트를 성사하기 위해 무슨 수를 쓰든 와인 수입업자를 구워삶아야 했다. 학연, 지연, 회유, 협박 등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도 안 통하면 마지막은 술로 끝장을 봐야 했다. 만사가 다 술로 해결되는 것은 아닐지언정 한국 사회에서 주량이 세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데 큰 장점이 되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상업적 거래관계에서는 특히 더 했다. 끝까지 안 풀릴 것 같은 거래도 상대방과 대면해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시는 호기를 부리면 거짓말처럼 일이 풀릴 때가 종종 있었다.


태경은 입사 전까진 그다지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선후배를 막론하고 취기 없이는 음악을 논하지 말라며 술을 가까이하는 동아리 학우들이 꽤 많았다. 태경 역시 술과 낭만의 상관관계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술기운을 빌린 음악은 진정한 음악이 아니라 그저 술주정에 불과하다며 자칭 이태백이라던 애주가 학우들을 멀리 했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론 원하든 원치 않든 술은 업무의 필수요소였다. 거래가 잘 풀려도 술, 안 풀려도 술이었다. 태경은 입사 초기 거의 매일 이어지는 폭음을 버텨내기 위해 술자리에 가기 전 눈 딱 감고 억지로 버터를 몇 숟갈씩 떠먹곤 했다. 음주 전에 버터를 많이 먹어두면 위벽에 기름막이 형성돼 알코올의 흡수를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음을 하면 다음날 심한 숙취와 속 쓰림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업무의 연장이었고 직장 내에서 살아남으려면 참고 이겨내야 했다. 술도 자꾸 마시다 보면 는다고 지금은 입사 초기보다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술이 세졌지만 과음 후에 찾아오는 숙취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일, 술, 숙취 이렇게 세 가지는 태경에게 하루 세 끼만큼이나 당연한 일상사가 된 지 오래였다. 오늘도 어쩌면 능구렁이 같은 와인 수입업자를 구워삶기 위해 죽기 살기로 술을 진탕 퍼마셔야 할지 몰랐다.


“X새끼, 술 좋아하니 포도주 장사를 해 먹겠지. 그렇게 좋아하는 술, 잔뜩 처먹다 뒈져버려라, XX!”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오른 태경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쌍욕이 튀어나왔다.


오전 중에 바쁜 업무 몇 가지를 처리하느라 혼자 구내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태경은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들고 회사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탁 트인 공간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기분이 상쾌했다. 오후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즐기는 망중한이었다. 이제 막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려는데 문자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스마트 폰 음향이 들렸다. 바지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보니 장문의 문자 메시지 한 통이 와 있었다.


Blue Dragons 모임 안내

1. 일시 : 2023.12.29.(금) 19:00

2. 장소 : 흑석동 먹자골목 입구 중식당 안동장(安東莊)

3. 목적 : 2023년 망년회 및 05학번 임형준 앨범 출시 기념회

4. 참석 가능한 회원은 사전 연락 바람

오래간만이다. 잘 지내지?

얼마 전 형준이가 작곡한 곡이 수록된 앨범이 출시됐다. 친구들끼리 모여 연말 망년회 겸 축하 파티를 열려고 한다. 다들 보고 싶어 하니까 너도 꼭 참석하길 바란다.

총무 송인철




<Bravo, 청룡! 04에서 계속>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