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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Mar 06. 2024

우리 집 갈래?

"괜찮은 거냐?"

"뭐가."

"너 손목 말이야."


준혁은 손목을 까닥거리며 말했다.


"멀쩡하지 않으면 뭐. 물구나무서기라도 할까?"

"어호. 말이나 못 하면. 가라. 기다리겠다."


준혁은 피식 웃으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가게 밖에 있어야 할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 뒤에도 차 옆에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발을 해서 대체 어딜 간 거야?'


다급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무심한 신호음만 울려댔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갔다면 분명 택시를 탔겠지. 큰 도로로 나와 두리번거리다 택시를 타려던 미소가 보였다. 숨이 차게 달려온 준혁은 미소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왜 여깄 냐고!"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녀의 눈물을 보자 그의 마음은 더 심하게 요동쳤다.


"미안.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그래서."


준혁은 미소를 꼭 끌어안았다.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


둘의 머리 위로 비가 두둑 떨어졌다. 예보도 없이 찾아온 겨울비. 어머니가 떠난 그날도. 손목이 바스러진 그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다. 모질게도 차가운 비.


"제발 사라지지 마."


품에 안고 있어도 사라져 버릴까 무서웠다. 물러설 마음 따위는 없었다. 더없이 좋아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느껴졌다.


"안 사라질게요."


그의 품에서 오래전 엄마가 씻겨줬던 비누향이 났다. 기억을 소환하는 향인지 잊고 있던 생각들이 하나둘씩 생각났다.


복잡한 자료를 한 번에 정리해 주고,

'이 데이터는 내가 처리하죠.'


점심 거른다 나무라면서 샌드위치를 챙겨주었다.

'왜 점심 안 먹습니까? 이러다 쓰러지면 나보고 일 다하라고?'


회식이 끝나면 꼭 집에 바래다주곤 했다.

'무슨 술을 이렇게 마십니까? 공주임 출근 못 하면 나만 불편합니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 바보 맞네.'


"울다가 웃으면 안 되는데."


준혁이 미소의 눈을 내려다보았다.


"왜 안 되는데요?"

"알려줄 테니까. 우리 집 갈래?"


겨울답지 않게 비는 세차게 내렸다. 와이퍼는 우아하게 시야를 씻어내주고 있었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차에 올랐다. 가지런히 손을 무릎에 올려두고 그가 운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준혁의 따뜻한 손이 미소의 차가운 손가락에 하나씩 끼워졌다. 따뜻한 온기가 손가락 사이사이에 번졌다.


"아직도 차갑네."


손을 빼려 하자 더 꼭 잡아챘다. 그렇게 미소는 준혁에게 꼭 붙들리고 말았다. 집으로 도착한 준혁은 미소의 발부터 살폈다. 아무래도 오늘 산전수전 겪어서인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는 따뜻한 물로 그녀의 말을 씻겨주었다.


"발이 엉망이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니 졸음이 쏟아졌다. 소파에 앉은 채 미소는 잠이 들었다. 준혁은 그런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은 아프니까. 자신의 셔츠를 벗어 침대 위에 올려두고 욕실로 들어가 긴 샤워를 마쳤다.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욕실 밖을 나왔다. 그 사이 미소는 잠에서 깼는지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픈 발을 한 걸음씩 디뎌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본부장님."


갑자기 일어나 다가오는 미소에 놀란 건 준혁이었다. 잠꼬대인가. 왜 갑자기.


"잠든 거 아니었습니까?"


점점 더 다가오더니 그의 앞에 섰다. 팔을 들어 목 위에 올렸다.


"아닌데요."


아슬아슬하게 걸친 수건은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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