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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Jan 12. 2024

신으면 편해.

미소는 한과장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갔다. 걸음이 어찌나 빠르던지 헐레벌떡 계단을 내려왔다. 현관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과장의 모습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아까 껴안느라 못 본 그의 캐주얼한 옷차람이 그랬다.


'슈트 안 입으니까 딴 사람 같네. 저렇게 어깨가 넓었었나. 아까 보니까 태평양 만하던데, 아니지,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주말에도 불러낸 상사한테 말이야.'


미소는 이내 웃음기를 없애고 경직모드로 돌아왔다. 주말에 일 시키는 상사는 최악이니까.


"추우니까 빨리 타죠."


준혁은 조수석 문을 붙잡고 서 있었다.


'칫. 누가 문 열어 달랬나.' 심통 맞은 표정으로 올라탄 차 안은 은은한 커피 향으로 가득했다. 매일 아침 먹던 회사 앞 커피가 그리웠던 참인데.


'어? 근데 이거 그 집 커피 냄샌데 진짜 맞네.'


운전석 문이 열리며 준혁이 차에 올랐다. 커피 냄새에 취한 미소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흐뭇했다.


'일찍 가서 사 온 보람이 있네.'


"과장님! 이 커피 설마. 회사 앞에서 사 오신 거예요?"

"네. 그런데요."

"와. 냄새 죽이네요."

"내가 그 집 커피 아니면 안 마셔서. 사는 김에 공주임 것도 샀으니 먹던가."


뭐야. 오다 주웠다는 걸 돌려 말한 거지? 말하는 싸가지 하곤.


"네. 힘들게 제 것까지 챙겨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잘 마시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공미소 놀리기.


"그럼 출발합니다."


미소는 코에 커피를 대고 향을 가득 집어넣었다.


'주말에 상사와 마시는 커피도 싫지만은 않네.'


겨울인데도 날씨가 춥지 않아 창문을 열어두었는데도 상쾌했다. 목적지를 모르는 차는 그렇게 시원한 도로를 달렸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서울 근교 아웃렛이었다. 경쟁회사가 브랜드가 잔뜩 입점해 있는 곳이었다. 준혁은 평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오늘 이 매장들 다 둘러보고 갈 거니 서둘러요."

"네? 여길 다요?"

"왜요? 회사에서 수당도 주지 않습니까?"


이 꽉 막힌 상사야. 수당이 중요하니. 황금 같은 주말을 날리게 생겼는데.


"여긴 백화점과 다르게 매장들이 밖에 있어서 둘러보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 더 빠르게 봐야죠. 우선 저 매장부터 들어가 보죠."


준혁은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이동했고 미소는 부운 발을 욱여넣어서 그런가 구두가 불편해서 걷기가 힘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화 신고 오는 건데. 왜 말을 안 해주냐고 진짜.'


배려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준혁이 얄미웠지만 주말 수당은 두둑했기에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며 준혁을 따라다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미소는 슬슬 배가 고파졌다.


"이 매장은 화려하진 않지만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군요. 공주임 듣고 있습니까?"

"네. 듣고 있습...... 꼬르륵."


그녀의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없이 배를 가렸고 민망한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아침 안 먹었습니까?"

"아침 일찍 불러내는 어떤 분 덕분에 먹을 새가 없었습니다만."

"그럼 차로 가죠."

"네? 차요? 이 근처에도 있을 텐데."

"주말에도 일시 켰다고 입이 그렇게 나와있는데 그냥 입 막음이 되겠어요?"


미소는 대체 이 남자의 꿍꿍이가 뭘까 한참 고민했다.


'오다 주웠다면서 커피를 내밀지 않나.'

'일은 시켜놓고 밥은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하질 않나.'


대체 뭐냐고. 왜 이리 헷갈리게 하는 거야. 미소는 퉁퉁 부은 발을 간신히 끌고 차로 향했다. 차에 올라 구두를 슬며시 벗어두고 있는데 준혁이 상자를 하나 건넸다.


"오다 주운 거."

"설마. 폭탄 그런 거 아니죠?"

"설마."


미소는 서둘러 상자를 열어보았다.


"어? 이거 아까 봤던 그 운동화 아니에요?"

"그러게. 회사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센스 없게 구두가 뭡니까? 직원의 발 보호 차원에서 샀으니 오해는 말고."

"됐어요. 안 신을래요."


출근한 것도 서러운데, 센스 없게 구두를 신고 왔다니. 으악.


"그냥 좀 신죠. 오후에도 많이 걸어야 하는데."


미소는 마지못해 신발을 받아 들었다.


"그럼 신고 돌려드릴게요. 줄 사람 없으면 버리시던가."


이래야 공미소지. 내가 괜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니까.


"난 줬다가 뺏는 사람은 아니라. 공주임이 신던가, 버리던가."


준혁은 화가 난 척 연기를 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힐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웃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한준혁 정말 가만 안 둘 거야!'


미소의 마음이 화르륵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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