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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Jan 17. 2024

한과장의 약점

강아지야?

준혁은 마음속으로 휘파람을 부르며 신나게 도로 위를 달렸다. 미소의 눈빛이 싸늘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날이면 날마다 볼 수 있는 얼굴이 아니지 않나. 이럴 때 많이 봐둬야지. 신난 얼굴을 애써 숨겼다. 주말 도로는 한산했다. 준혁은 이 곳에 오면 꼭 들르는 식당이 있었다.


'할머니 잘 계시려나.'


서울에선 절대 이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미소는 그런 준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린 배를 붙잡고 통곡을 하고 있었다.


'이 놈에 배는 오늘따라 더 요란하네. 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아직 멀었나.'


참다 보니 배가 아픈 건지 배가 고픈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어라? 이거 신호가 온 것 같은데. 망했다.'


미소는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며칠에 한 번씩 문을 두드리는 녀석이었다. 신호가 오면 반드시 가야 하는데, 도로 한복판에 가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미소는 배가 아니라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휴대폰을 붙잡고 근처 커피숍과 식당을 확인했다. 멀지 않은 곳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검색됐다.


'죽으라는 법은 없네. 하.....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공주임. 어디 아픕니까?"

"아니요. 아프긴요."

"얼굴이 하얗게 질렸는데."

"배가 고파서 그래요."

"그런 얼굴이 아닌데. 아픈 얼굴이야."


'그래. 아파. 죽을지도 몰라. 에라 모르겠다.'


"그게요. 과장님. 정말 죄송한데, 여기서 좀 내리면 안 될까요?"

"여기서요?"

"진짜 죄송해요."


차 문을 열려고 하는 미소를 겨우 말렸다.


"공주임. 미쳤어요? 여기서 문을 열면."

"안 세워주실 까봐요. 그러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좀 세워주세요."


차를 급정거했고 미소는 그 길로 눈에 보이는 상가로 냅다 뛰었다.


'이것은 바로 긴급 신호다. 빨리 뛰지 않으면 영영 집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몰라!'


다행히 근처 상가에 화장실이 열려있었다.


'여기가 천국이로구나.'


지옥에서 천국으로 돌아온 미소는 여유롭게 상가를 나서려는데 준혁이 뒤에서 미소를 붙잡았다.


"시원합니까?"

"시원하다뇨! 뭐가."

"바람이요."


'능구렁이' 다 알면서 저러는 것 봐.


"과장님, 점심은 먹을 수 있는 거예요?"

"다 왔어요. 상가 뒤쪽으로 걸어가면 됩니다. 난 또 알고 뛰어가는 줄 알았네."

"아.... 알았어요."

"가죠."


준혁은 큰 보폭으로 그녀를 앞질렀다.


"어서오세요. 어? 잘생긴 총각 오랜만이네."

"잘 지내셨죠?"

"그럼. 나야 늘 똑같지. 오늘은 각시랑 온 건가?"


마침 미소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주인 할머니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각시는 여기 앉으셔."


'내가 왜 각시가 됐어?'


"과장님. 오늘 신혼부부 콘셉트에요? 각시라뇨?"

"글쎄요. 사장님이 오해를 하셨봐요."


준혁은 미소의 손을 붙잡고 의자에 앉혔다.


"각시는 뭐 좋아해? 이 할미가 오늘 특별히 신경 써서 해줄게."

"저는 다 잘 먹습니다."


씩씩한 미소는 오해보단 배가 더 고팠다.


"여기 칼국수 진짜 맛있는데 먹어봐요."


준혁은 미소 앞에 수저와 젓가락을 놓아주며 말했다.


"그럼 칼국수 먹죠. 맛없으면 알죠?"

"왜요? 한대 치게?"

"치죠. 밀치기도 하고 쳇."

"으이그."


준혁이 미소의 앞 머리를 큰 손으로 헝클어 비벼댔다.


'뭐야. 왜 비벼!'


"다 헝클어지잖아요."

"아, 미안. 귀여워서 그만."


'말도 안 돼. 나 오늘 강아지야? 왜 귀여워?'


한과장의 마음을 녹이는 공미소. 그녀가 바로 그의 약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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