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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양 Nov 29. 2023

무기력의 늪

전혀 괜찮지가 않습니다.


"요즘도 아무것도 안 해?" "젊은 애가 왜 그러고 살아?" "뭐라도 해"

무기력함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무기력한 사람을 보면 이런 말을 쏟아낸다. 그것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도 모른 채..


결혼 후 바로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유산을 경험한 후 나는 모든 삶이 멈춰진 듯한 경험을 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아픔이었다. 고작 일주일의 기쁨도 누리지 못했던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나의 슬픔을 슬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간단한 시술이었고 반나절만에 체력은 회복되었지만 나의 마음은 일주일째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시끄러운 공장이 있는 곳이 직장이었기 때문에 쿵닥쿵닥 프레스 찍는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매일 듣던 그 소리가 그때는 왜 그렇게 크게 들리던지 다시 출근해야 했지만 나는 일주일이나 연차를 연속으로 냈다. 혼자 집에서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울다가 그렇게 슬픔을 견뎌내고 있었다. 


아마 그해였나.. 잘 다니던 회사였지만 이런저런 핑계들로 남편과 함께 동시에 퇴사를 결정했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여행 다니면서 그동안 모아 온 돈을 까먹는 백수생활을 반년이 넘게 했다. 아직 젊으니까 뭐든 다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유산한 아픔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더욱 임신에만 집중하겠노라 집순이 생활을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싫었지만 집에서만 있다 보니 나는 무기력함에 빠져들었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나고 저녁이면 술을 마시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지냈다. 물론 아이를 갖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도 그 와중에 시도했지만 결국엔 실패의 상처뿐이었다. 그 아픔을 잊기 위해 다시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런 모습이 참 한심했을 텐데 그 긴 시간 동안 남편은 나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운동 좀 해." "집에서 좀 나가" 등의 뻔한 조언조차 건네지 않았다. 남편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라며 취미생활도 지원해 주고 묵묵히 날 지켜봐 줬다. 그때는 남편의 고마움을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망나니 같던 나에게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지 겉으로 웃고 있지만 울고 있는 내속을 들여다본 게 아닐까 싶다.


가까운 친척들조차 나를 보면 "아직도 먹고 대학이야?" "팔자가 좋네"라며 놀려댔다. 걱정반 진심반인 그 말에 점점 더 나는 깊이 숨어버렸다. 


침착맨이 한 이야기 중에 공감 가는 말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뭐라도 시작해. 하다가 안되면 그만두고 다른 걸 시작해 보면 되지 일단 시작부터 해"라고 하는 말이 무기력한 사람들에게는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 그 한 번의 시도가 엄청난 스트레스이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시작 자체가 힘들어진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이유를 납득해야만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긴 시간과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남편에게 "예전에 내가 그렇게 술만 먹고 잠만 자고 밖에도 안 나갈 때 왜 한 번도 나한테 뭐라고 안 했어?"라고 물은 적이 있다. "어차피 네가 힘들면 그만할 테고 스스로 그만해야겠다고 깨달아야 그만하는 거지 내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하겠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위태로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잘 견뎌내는 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한창 내가 위태로웠던 그때에 남편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생각하면 지금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진다. 물론 그때는 그 어떤 위로도 조언도 내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을 것이다. 힘이 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기대기도 하고 울기도 해야 한다. 버틴다고 버텨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약이란 말도 무기력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점점 깊은 늪으로 빠져들기 전에 우리는 도움을 청해야 한다.

"나 너무 힘들다고.." "너무 지쳤다고" "제발 도와달라고" 그러면 누군가 그 이야기를 듣고 분명 손을 내밀어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자. 나는 아직 휴식이 필요하다. 동면을 하는 중이니 봄이 오면 우리는 언젠가 깨어날 것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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