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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양 Nov 22. 2023

아무렇지 않게 상처 주는 사람

전혀 괜찮지가 않습니다.



사람마다 아픔이 치유되는 속도는 다르다. 누군가에는 그 아픔이 반나절이면 나아지는 정도겠지만 누군가에는 그 아픔이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쓰라리고 아린 상처이다. 물론 같은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상대방 상처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남의 아픔을 쉽게 생각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난임으로 고생한 지 10년이 넘어섰지만, 나는 여전히 아주 깊숙한 어딘가에 그 고통의 상처가 저 깊숙이 남아있다. 두 번의 유산으로 나는 실패의 쓴 경험은 물론, 여자로서는 겪고 싶지 않은 슬픔을 겪었다. 그러나 같은 여자이면서도 나를 이해 못 하는 시어머니의 잔인한 말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결혼 후 2년이 넘어 겨우 얻은 아이가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고 울고 또 울던 나의 첫 번째 유산이 있었을 때 다니던 회사를 일주일이 넘게 가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어머니는 "소파시술을 하고 나면 자궁이 깨끗해져 다음엔 임신이 더 잘된다고 하더라"라는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했다. 지금 같았으면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렸을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고만 있었다.


외동아들과 결혼한 무게감은 생각보다 컸다. 늦둥이 막내딸의 고생을 알던 부모님은 나에게 쉽게 유산과 임신에 대해 말 한마디의 조언도 쉽게 하지 못하시며 내 눈치를 보셨지만 시댁은 그렇지 않았다. 다행히 대한민국 끝과 끝에 사는 시댁과의 거리 덕분에 숨을 쉬고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생각지도 않은 두 번째 임신으로 그토록 갖고 싶던 산모수첩을 받고 기뻐하던 날이 아직 생생하다. 남편에게 그 기쁨을 전했을 때의 남편의 행복한 표정이 여전히 나를 미안하게 만든다. 남들의 임신 소식에 배 아파하던 그때 '그래. 드디어 나한테도 이렇게 기쁜 날이 오는구나.' 싶어 그동안의 불행과 힘듬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행복했던 짧은 일주일이었다. 갑작스러운 복통과 동시에 피를 쏟았던 그날 병원으로 가는 내내 불안했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결국 나는 두 번째 유산을 했다. 산모수첩을 받고 기쁨에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소식을 알려드렸지만 결국 유산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힘들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말은 "시아버지한테 말안하길 잘했네"였다.


지금 생각해도 피가 거꾸로 쏟는 상황이었다. 어쩜 저따위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까. 보통의 위로라고 생각할 수 없는 발언들로 안 그래도 힘든 나를 더욱 죄책감이 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왜 나는 이혼을 하지 않았을까 싶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희 둘만 좋으면 돼. 이 몸만 생각해'라며 가끔 따뜻한 말을 하시는 시어머니였다. 아들 하나밖에 없는 집이라 딸 둘 인 우리 집과는 다르게 칭찬이나 따뜻한 말을 오글거려 못하는 집이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행동도 말이 다른 시어머니였다.


그런데 얼마 전 어머니의 외종질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소식을 전했다. 장손의 임신소식이었기 때문에 큰 이슈였을 것이다. 물론 나한테 직접적으로 전한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몰래 말씀을 하신 것을 전해 들었다. 어머니랑 통화로 김장얘기가 나오면서 매년 하던 김장을 이번에는 못하게 됐다며 말씀하길래 "동서가 임신했다면서요."라고 하니 "걔 유산했어."라며 왠지 모르게 들떠 보이시던 수화기 너머의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뒷말로 "너랑 똑같이 심장이 안 뛴다고 하더라. 너랑 똑같이. 너도 그랬잖아. 신기하지 너랑 같아"라며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셨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 나는 오늘 어머니와의 통화에 대해 얘기를 했다. 남편 은 "심술을 그렇게 쓰니까 우리가 안 되는 거야"라며 어머니에 대해 불만을 표현했지만 "근데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더 미안했어. 늘 너희 둘만 잘살면 된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머니도 동서의 임신이 왠지 모르게 질투가 나셨나 봐. 그래서 나는 슬펐어." "근데 어머니는 왜 너랑 똑같다는 말을 하면서 내 지난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신 걸까.."라며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버렸다.

어머니의 화법은 늘 처음에는 당황해 아무 말을 못 하게 만들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생각하면 할수록 서럽거나 화가 나게 만든다. 이날도 전화를 끊고 마지막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아 나는 혼자 눈물을 흘렸었다.


나도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은 결혼하자마자 쉽게 가지는 아이를 나는 10년이 되도록 못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들은 수없이 많은 말들을 어머니는 더 많이 들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이 손주, 손녀에 대한 자랑을 늘어놀 때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 하셨을 거다. 게다가 처음으로 본인 친정 안에서 전한 첫 임신소식이 10년 전 우리가 아닌 몇 달도 되지 않은 조카의 소식이었기 때문에 내심 속상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난임으로 고생할 때는 지나가는 임산부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나도 모르게 질투심이 났다. 아이를 너무 좋아하는 나지만 자기 아이를 안아보라는 친구의 말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자격지심이 심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뒷말이 문제였다. "너랑 똑같이 심장이 안 뛰어서 유산됐데"라는 말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하실 수 있을까? 아무리 10년이 지난 이야기라고 해도 내 속에서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 상처인데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하실 수 있을까? 남편은 미안하다며. 자기는 겪어보지 못해서 공감을 못하는 것일 거라 미안하다며 대신 사과를 했다. 어쩌면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니까 서러워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시어머니의 화법에 당황했던 나는 다시 한번 아물어가던 상처가 벌어져 다시 따가워졌고 지나간 기억이 떠올라 한동안 힘들어했다.


난임을 겪으면서 주변에서 쉽게 하는 말들에 상처를 받기 일쑤였다. 남편이 나에게 취직을 하지 않기를 바랐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남들이 쉽게 하는 질문들에게 상처받아 돌아오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이 나이쯤 되고 결혼을 한 여성은 누구나 들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 있다.

"결혼했어요?" "그럼 아이가 있겠네요?" "몇 살이에요?" 당연하게 이어져나가는 질문이다. 그중 "아니오. 아이가 없어요."라고 하면 "아,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아니오. 10년 차인데.."라고 대답하면 정적이 흐르거나 오지라퍼들은 "병원은 가봤어요?""내가 아는 지인도 아이가 없었는데.. 어디 어디 병원을 가서 가졌어요."라며 원치 않는 조언을 늘어놓는다.


분명히 말하는데 위로던 조언이던 상대방이 원할 때 필요할 때 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하찮은 조언과 위로로 아픈 곳에 더 상처를 내지 말아야 한다. 본인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면 제발 아는 척 말고 위로한답시고 안쓰러워도 하지 말자. 


겪어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남의 상처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직도 그 일을 지금까지 생각하면서 살면 너만 손해야. 잊어버려. 어쩔 수 없잖아."라며 남의 상처를 그깟 작은 일로 치부하지 해서는 안된다. 


친구가 결혼준비를 하면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소식을 전하고 식사를 했다고 한다. 가족문제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만나 "너도 너를 좀 살피면서 살아. 너무 가족을 위해서만 살지 말고"라는 조언을 했다가 친구에게 된통 당했다고 한다. "너는 지금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고 직장에서도 잘 나가고 네가 마음이 편하니까 그런 말을 수 있겠지."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친구의 상황을 듣고 너를 위해 살라고 말해준 게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처음에는 친구도 화가 났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내가 지금 상황이 좋고 아무런 문제가 전혀 없을 때는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말들이 힘든 상황에서 안 좋게만 들을 수밖에 없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줘 봤자 그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격지심일지도 모르나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네가 뭘 안다고"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진정 그 사람을 위한다면 백 마디 말보다는 그냥 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어쭙잖은 위로의 말로 괜한 오해를 사는 것보다는 아무 말하지 않는 것이 관계 유지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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