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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양 Nov 21. 2023

운동화 끈도 제대로 못 묶어?

전혀 괜찮지가 않습니다.


남편과 걸을 때면 늘 운동화 끈이 말썽이다. 꽤 친절한 사람이지만 운동화 끈은 스스로 묶는 거라며 늘 나를 채근한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제대로 운동화 끈을 못 묶어?" 


"다시 묶으면 돼"라고 말하고 운동화 끈을 다시 묶는 나를 보다가 "그게 아니지. 그렇게 묶으니까 다시 풀리는 거야. 아직까지 운동화 끈도 묶다니"라며 나를 놀려댄다. 그럼 나는 "늘 이런 건 아빠가 해줬어. 나는 이렇게 배웠어. 풀리더라도 다시 이렇게 맬 거야."라며 고집스럽게 늘 묶던 방식을 고집한다.


아침 6시 반 출근길 말려둔 운동화에 끈이 안 매여있으면 늘 "아빠"를 외쳤다. 아침부터 딸내미 운동화 끈을 군소리 없이 매 주던 자상한 아빠였다. 그렇게 아빠가 깔끔하게 묶어준 운동화를 신고 출근했었다 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과 다르게 아주 작은 부분들이 더 선명하게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상이었지만 나의 아주 작은 습관 하나에도 그것들이 남아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는 한다. 운동화 끈이 풀려 귀찮고 남들에게 칠칠치 못한 모습일지라도 나는 여전히 운동화 끈을 제대로 꽉 묶지 않는다. 


어릴 적 밥상에 내가 좋아하는 갈치를 구워주면 아빠는 자연스레 양쪽 끝부분을 떼어내고 먹기 좋게 몸통만 발라서 나한테 주시던 분이셨다. 살도 몇 점 없는 양쪽 끝부분은 아빠의 몫이었다. 옆에서 보던 엄마는 딸만 챙기고 나는 안 챙겨주냐며? 질투하는 말을 하곤 했다. 과묵하던 아버지였기에 꽤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지만 안 보이게 아주 다양한 부분에서 나를 살뜰히 도 챙기고 계셨다.


딸만 둘이던 우리 집에 유일한 남자였던 아빠는 손재주가 좋았다.  "아빠"만 외치면 고장 난 물건들도 척척 고쳐주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인지 모든 아빠는 전기도 잘 만지고 고장 난 것들을 잘 고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결혼하고 나니 전등은 엄마가 가는 거라던 남편을 만나고서야 우리 아빠가 조금 다른 분이셨다는 걸 알았다.


돈을 잘 버는 게 우리 엄마의 특기라면 아빠는 따뜻한 분이셨다. 젊을 적 엄마의 속을 꽤 썩이신 분이셨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일을 하는 엄마가 퇴근하면 늘 "오늘도 수고했네"라고 말씀하시며 삶은 고구마와 찐 옥수수를 건네던 아빠셨다. 내가 전화목소리만 안 좋아도 감기가 걸렸냐며 감기가 나을 때까지 전화를 하셨다. 사위에게 "우리 딸은 아이스크림만 먹으면 감기가 걸리니 절대 먹이지 말게"라고 하셔서 나는 결혼 후 아이스크림이 금지되기도 했다. 말수 없는 장인어른의 당부를 저버리기 힘들었을 거다.


우리 집  만능 해결사였던 아빠가 돌아가신 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빠에 대한 기억들로 가끔 혼자 울 때가 있다.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나는 전혀 괜찮지가 않다.

남편이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할 때면 우리 아빠는 안 이랬는데라며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고는 한다. 

우리 집 유일한 남자이자 나에게 기준이 되어버린 우리 아빠는 좋은 남편은 아니었을지 모르나 좋은 아버지셨다. 70대 초반 너무 빠른 이별이었기에 더욱 아쉽다. 말대신 손 편지로 미안함을 전하던 아빠를 언젠가는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 해지는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문득 떠오른 기억에 차오르는 눈물을 닦으며 담담한 척 괜찮은 척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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