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괜찮지가 않습니다.
<그림 : 나라 요시토모>
어린 조카의 눈에는 이모는 항상 화가 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렇다. 그 시절 나는 매우 가시 돋친 사람이었다. 정확히 어떤 것에 화가 나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 간의 문제가 발단이기도 했다.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겪는 사춘기와 같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늘 온몸을 감싼 가시들로 나를 방어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CD플레이어가 생기고 나서는 헤드셋을 끼고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다는 여고생의 모습과는 다른 외골수 같은 모습이었다. 작은 체구에 까칠한 성격을 가진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굳이 화를 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과 오히려 화를 낼수록 나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부모님은 가족이란 이유로 그저 넘어가기만을 바라왔다. 사회에 나가서는 아니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좋게 돌려서 거절하는 방법을 알아야만 했다. 내성적인 까칠함을 가진 나는 이제는 생각하는 것을 바로 입으로 뱉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참 어려웠다. 그렇게 나는 적응을 해갔고, 어느덧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르게 변해갔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이 정말 이해되지 않는 나는 억울함, 분노 등이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가족과 사회 안에서 잠식되어 버린 내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물론 철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던 때가 옳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싸이월드에 솔직하게 써 내려가던 글들을 이제는 한 문장도 제대로 써 내려갈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이런 내 생각을 적어도 될까?' 하는 눈치를 보게 되었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나는 '솔직하게 말하되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하는 방법'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 기분 나쁘다는 말을 도대체 어떻게 좋게 표현할 수가 있을지 전혀 모르겠다. 듣는 사람입장에서는 지적을 당하는데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 없을 수밖에 없는 거지.
그렇다면 그냥 넘기고 무시하고 사는 수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참 답답하게 만든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좋은 말일수는 없다. 당연히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반박을 하는 것도 당연히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을 피할 수는 없다. 고의적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려고 한말이 아니라면 더더구나 자신이 내뱉은 말이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니까 굳이 불화를 조장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넘어가고 넘어가고 하다 보면 결국 누군가는 마음속에 불씨가 생겨나겠지.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사사건건 불만을 얘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상대방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발언에 대해 말을 한다면 인정하고 다음부터 안 그러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는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상처받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지적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어렵다. "다 널 위해 한 말인데 뭐가 문제야. 내 말이 틀렸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나의 생각을 상대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다음번에는 꼭 이렇게 말을 해줘야지. 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해야지'라며 소심한 복수를 꿈꿔보고는 한다. 예전보다 가시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