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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양 Dec 18. 2023

사과가 그게 어렵습니까?

전혀 괜찮지가 않습니다.





어제 친정에 김장김치를 가져다주는 길이였다. 좁은 골목길 오르막인 본가에 올라가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옆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 때문에 김장통이 다 엎어져 버렸다. 다행히 김치가 세지는 않았지만 나는 화가 나서 운전자를 째려봤다. 아저씨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보고 사과하는 시늉도 없이 갈길을 가는 것이다. 결국 뒤늦게 쫓아가 클락션을 소심하게 눌러주고 나도 본가로 들어갔다. 


"아니 왜 잘못을 했으면서 사과를 안 해"라고 생각하는 나를 남편은 "순진하기는 원래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걸 싫어해.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이라며 세상을 통달한 것 같은 말을 한다.


그렇다. 간혹 엄마와 다툴 때가 있어도 엄마는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 "내가 언제"라며 발뼘을 했었다. 시간을 정확히 기억해 말하는 날에는 "너는 별 걸 다 기억한다"라며 오히려 나를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런 식의 대화는 언니도 똑같았다.


다들 자신들은 서운해하면서 사과를 요구하지만, 막상 자신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우리 집안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나는 아빠가 참 좋았던 이유 중 하나도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서 돌아서면 늘 미안해하시고 그 표현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인문계 시험을 치를 때 실업계나 가라며 반대하던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인문계 시험에 합격하고 어느 날 거실에 나가니 식탁 위에 달력을 찢어 적은 편지가 있었다. '합격을 축하한다. 미안하다'라며 짧지만 진심이 담긴 아빠의 사과였다. 


첫 직장 면접을 보러 가기 전날 가족모임을 하고 나오는데 "너는 키도 작고 써먹을 때가 없어서 아무도 안 뽑아준다. 집에 가서 젖이나 더 먹고 오라고 할 거다"라며 나를 놀려대던 아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하니 한 번에 합격한 나를 온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시던 아빠는 첫 출근하는 날 버스정류장에 서서 버스기사들에게 "이거 xx 가는 거 맞아요?"라며 몇십 분 동안 물어보고 있으셨던 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한다. 나의 뜻과 상관없이 상대가 상처를 받을 만한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정을 하고 사과를 하는 일이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네가 상처를 받았다면 어찌 됐던 내가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면 눈 녹듯이 사라진 미움이 자존심을 세우느라 점점 오해만 쌓여가서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내가 어른인데 어떻게 어린 너한테 먼저 사과를 하냐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보면 나는 화가 난다. 어른도 실수를 하고 어른이라고 해서 잘못한 게 잘못하지 않은 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면 끝날 일을 자존심을 세우다 보면 점점 우리 사이는 멀어져 영영 어색해질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 발을 밟아도 "미안해요. 죄송해요"를 하는데 왜 사람에게 상처되는 말을 스스럼없이 해놓고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런 나를 소심하게 생각하는 당신은 정말 괜찮은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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