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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Mar 20. 2021

교토, 혼자 가다

혼자 다녀와도 충분히 괜찮은 도시

1년 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시기적으로 내게 여유가 있는 2월이면 해외여행을 가곤 했는데, 항공권이나 숙소 예약을 미리서 해야 했기에, 1월쯤에 사전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나의 주 목적지는 교토였다.

그즈음의 한국과 일본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관계 악화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급기야는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외교 차원에서의 양국의 분위기는 살얼음판 위를 걷듯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일본 여행도 많이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개인적으로 여행 적기인 2월의 찬스를 놓고,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 여행은 혼자서 나서야 했기에 너무 멀거나, 너무 생소한 곳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은 언어에 크게 위축되지 않으면서, 문화적 정서에도 쉽게 공감할 수 있기에 일본 여행에 대해서만큼은 늘 크고 작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교토는 정말 가 보고 싶은 도시였는데, 드디어 그 기회가 온 것이다. 

여행 시기는 근무 일정에도 무리가 없는 2월 말쯤으로 계획을 하고, 공항에서부터 숙소 주변까지의 동선을 고려해서 가 보고 싶은 곳들을 추려냈다. 짧고 굵은 여행을 생각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차근차근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나갔다. 


그런데 설 연휴가 지나면서 언론에서 연일 다뤄지는 뉴스를 보니, 뭔가 분위기가 싸해지며 차츰 이슈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중국 우한에서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그것이었는데, 중국 내 감염이 서서히 확산되면서 사람들의 일상과 일정에 심상치 않은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게다가 사망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도시는 폐쇄가 되기도 하고, 전무후무한 극도의 불안감에 사람들의 공포도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도 나는 모처럼의 여행 준비에 잔뜩 들떠있었는데, 사태가 쉽게 누그러질 기미가 안보였고, 오히려 점점 확산이 가속화되는 분위기였다. 나처럼 여행을 계획했던 사람들은 불안함에 속속 계획을 취소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1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가운데, 나는 매일매일의 추이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섣부르게 계획을 되돌릴 만큼 전후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주변에 나의 여행 계획을 말하는 것도, 세부적으로 계속 준비를 진행하는 것도, 심지어는 아예 계획을 백지화시키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급기야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우한시에 전세기를 보내, 그곳에 거주하는 교민들을 데려와 2주간 격리하는 조치까지 내렸고, 그 와중에도 확진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취소 환불에 대해 문의를 해봤다. 

그런데 내 항공권은 저가 항공권이라 취소 환불이 안 된단다. 일정이 짧아서 나름대로 꽉 찬 3일을 계획했던 거라, 이른 출발과 늦은 도착을 고려해, 가고 오는 편을 달리하다 보니, 예약한 여행사와 항공사도 두 곳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취소를 할 경우, 위약금을 여행사와 항공사 두 곳에 지불해야 한단다.

한 번도 이런 경험이 없었기에, 소비자에게 불리하고 부당하게까지 느껴지는 이런 세세한 조항까지는 사전에 알 수도 없었고, 항공권을 예매하면서 고려해 본 적도 없었다. 


항공권 취소는 일단 보류했다. 저가항공이라고는 하지만, 수하물과 여행자보험에 미미한 옵션까지 적용하다 보면, 결코 저가라고 할 수 없는 비용을 이미 지불했는데, 취소를 하게 되면 환불도 못 받고, 게다가 취소 수수료를 이중으로 지불해야 한다고 하니, 나의 계획은 진퇴양난, 사면초가였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자, ‘어떻게든 가 보자’라고 결심을 굳히고, 그날 이후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다시 여행 일정을 수정하고, 추가해 나갔다.

그때까지의 것들은 다 잊고 계획을 바꿔가며 마음을 초기화시켰다.
그토록 동경했던 교토로의 여행인데, 쉽게 포기하기에는 좀 아까웠다.(사실은 취소 수수료가 아까웠다.)


여행객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공항은 오히려 한산 해지는 분위기였다. 좀 긍정적인 면으로 들여다볼 때, 불안감만 아니라면 그때가 여행하기에 오히려 적기일 수도 있었다. 

물론 자기 합리화다. 최대한 긍정의 마인드로 리셋을 하며 스스로를 세뇌하느라 그렇지, 예기치 못한 이런 비상시국에는 누구나가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소나기는 피해 가는 게 정석이니까.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준비는 멈추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교토에 귀 무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블로거의 글을 보니, 내가 가려고 했던 곳과도 아주 가까웠다.

즉흥적이긴 했지만 여행의 미션 중 하나로, 교토 귀 무덤에 헌화하는 것을 계획했다. 이왕 여행을 가게 된다면, 불안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여행이니만큼 오히려 즐기면서 의미 있게 여행하고 싶어 졌다.

현지 사정을 모르니까 우선은 조화를 준비해서 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위성사진을 보면서 동선을 확인해보다가, 그곳으로 가는 길에 꽃집이 세 군데 있는 것을 우연히, 그것도 극적으로 알아냈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알게 된 그 정보가 너무나도 반가워 두 번 세 번, 눈으로 확인했다.

귀무덤 :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게 희생당한 조선인의 귀와 코를 묻은 곳.

사실 교토의 유명한 절인 기요미즈데라(청수사)는 자국민들도 많이 찾는 현지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상징적인 절이었다. 그리고 그곳 바로 아래쪽으로 큰 공원묘지가 있었는데, 귀무덤으로 가는 방법 중 내가 찾아낸 루트가 바로 그 공원묘지를 질러서 가는 길이었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다니는 길인 니넨자카와 산넨자카는 주변의 목조건물이 예쁘고 상점과 카페가 밀집돼 있는 아주 유명한 골목길로,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내가 가려고 한 그 공원묘지가 있는 길은, 개미 한 마리도 안 다닐 것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무심하고도 아주 한적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위치한 세 군데의 화원은 바로 공원묘지에 헌화할 꽃을 파는 작은 규모의 화원이었던 것이다.

북적이는 사람들과의 번잡함도 피해 갈 수 있고, 꼭 필요했던 꽃, 그것도 생화를 살 수 있으니 그야말로 나에게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의 일석이조였다.


비상사태와 같은 긴박한 분위기만 아니라면 나의 여행 계획은 순조로웠다. 그렇지만 전에 없이 혼자 떠나보려고 마음먹은 여행인지라, 다른 때보다도 더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한 곳을 둘러보더라도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의 노선을 정확하게 파악해둬야 했고, 위성사진으로 확인하면서 실사를 눈에 익히는 일까지, 꼼꼼하게 이중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런 일련의 준비과정이 내게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깨우침인 동시에, 어렵게만 생각됐던 혼자만의 여행에 큰 힘을 주는 작업이 되었다.

장소를 이동하면서 버려지는 시간을 최소화하기에도 예습과 복습은 꼭 필요했다. 실사를 확인하면서 주변의 큰 건물들까지도 세세하게 기억하는 일은, 현지에서 긴장하지 않고 작은 것들에게까지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가능하게 해 주었다.




몇몇 친한 친구들에게 이런 나의 발칙한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했더니, 걱정 반 응원반의 반응을 보였다. 친구들이 무얼 걱정하는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여행을 계획하고 구체적인 예약까지 마친 상황에서 맞닥뜨린 코로나 19의 상황은, 순간적으로 나에게 진퇴양난의 검은 날을 들이댔지만, 당시로서는 친구나 주위의 지인에게 함께 가자고 설득할 수 있는 상황도 안되었고, 계획 자체를 백지화시키기에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시기적으로 좋지 않은 때인 건 분명했으니까. 

다만, 스스로와 타협했을 때, 꼭 합당한 명분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변명하지 않고 자꾸 부딪쳐보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그 기회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부담을 가져야 하는 불안한 기회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1년 전 혼자만의 교토 여행은, 위기가 준 기회였다.

기요미즈데라

지금의 코로나 19 시기가 안정을 되찾고, 예전의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해지는 때가 되면, 나는 또다시 교토를 혼자 다녀 올 생각이다. 정갈하고 고즈넉했던 기온의 숙소를 다시 찾을 것이고, 어지간한 골목길로도 편안하게 다닐 수 있으니, 자전거로도 누비며 다녀보고 싶다.


그리고 꼭 해야 하는 일 한 가지는?

그렇지. 귀무덤에 헌화하는 일!

꽃을 사들고, 사뿐사뿐 걸어서 귀무덤을 다시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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