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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Mar 18. 2021

인연과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하루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것일까?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인연을 만나게 되는 셈이다. 스치고 만났는데도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

생각해보면, 나는 낯가림이 심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낯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기가 조금은 어색한 정도의 경미한 낯가림이 있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면, 날을 세우고 경계하지는 않지만, 먼저 말을 꺼낼 만큼의 변죽은 또 없는 것이다. 인연의 참된 시작은 눈빛을 섞고 말투를 섞으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학창 시절엔 정해진 운명처럼 학연을 통해 친구 혹은 인연이 생성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된 사람들과 주로 관계가 형성된다. 비슷한 상황과 조건이 충족될 때 새로운 관계를 맺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동아리 활동이나 취미생활, 운동과 같은 사회적 활동이나 다양한 기회를 통한다면 좀 더 폭넓은 관계를 만들 수 있겠지만, 누구나가 취미 생활을 하고 운동을 즐기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가 흔히 '인연'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관계들은 그냥 만나지는 사람들과의 관계보다는 훨씬 유연하고, 좀 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인연이 뭔가 특별해지려면 물론 시간이 필요하고, 감정이 무르익고, 자꾸만 기다리고 만나지는 일이 잦아져야 하겠지.

바람결에 스치는 것처럼 단순한 인연이든, 뭔가 특별한 감정이 무르익어 연인으로 각인되는 인연이든, 어느 것 하나라도 허투루 지나칠 인연은 없는 것이다. 소중한 인연으로 가꾸고 보태고 어루만져야 하는 감정들인 것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시나브로 감정이 특별해지면서 몽글몽글해지는 어느 한 때가 도래하면, 그때부터는 그 전까지의 인연과는 확연히 다른 특별한 것이 된다. 다른 의미에서 그것은 또 다른 시작, 그러니까 관계에 있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은 어쩌면 단순히 몽글몽글한 분홍빛만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건 거듭 생각해보아도 자명한 일이다. 안 되는 상황들과 녹록지 않은 시간들의 연속이며, 그 어떤 것들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기이한 미래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게 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들로 가득 찬,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겠지.

부족하고 넘치는 것이 모호하고, 균형적인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외줄을 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고, 매 순간을 좋은 기억들로만 채울 수는 없는 것이기에, 사랑하는 일은 그만큼 노력과 희생이 뒤따라야만 가능한 것이다.

내 것의 일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각오,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게서 한 걸음은 물러나야 할 수도 있다는 현실 인정, 한 번 했던 일을 싫은 내색 없이 반복해야 하기도 하고, 한 번 가보았던 곳에 추억을 거슬러 또 한 번 가기도 해야 하는 것처럼, 이러저러한 일들을 다 감당해내야 하는 등의 정신적인 소모가 많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에 목말라하고, 사랑 없음에 주눅이 들고, 끊임없이 상대를 찾으며, 숱하게 헤매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런 일들이 가히 의미 없는 일이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생을 살아가면서 일생을 통틀어 온전히 꼭 이루어야 하는 일이 사랑이 아니고 그 무엇일까? 오로지 사랑하는 일을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한다면, 그건 미친 생각일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진다. 볕 좋은 봄날에 웬 실없는 소리냐고 핀잔을 듣는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자꾸만 궁금해진다. 나는 해가 바뀌고 또다시 봄이 온다고 해도 같은 것이 여전히 궁금해질 것이다.


여기에 내가 적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인연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 아무리 사소한 어떤 것이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내게로 오는 것은 없다는 것, 그래서 그 인연이 어떠한 계기를 만나 특별해지는 순간에 우리가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는 그 특별함의 시작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 뭐 그렇다.

어느 것 하나라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단순하건 단순하지 않건 간에 지금 나의 인연을 살뜰히 보듬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일생의 과업이다.

사랑! 그것은 내가 이번 생에서 마지막까지도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러니, 내 안의 나에게 자꾸만 물을 수밖에. 자꾸만 자꾸만 사랑하라고 부추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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