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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Mar 18. 2021

갱년기에 고함

갱년기에 처연해지는 자기 훈육법

갱년기는 마치, 학창 시절에 정확하게 기간을 정해주는 중간·기말고사처럼 미리 알고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따로 없다.

전과 달라진 심적, 육체적인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각하기까지도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심지어는 스스로가 갱년기를 의심해볼 여지도 없이 갱년기 속을 헤매고 있기도 할 것이다.


통계적으로 갱년기에 겪게 되는 증상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개인차가 있으니 딱히 수긍할 수도,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다. 다만, 나의 일상에 참고하는 정도로만 예의 주시하며, 자신을 체크해 나갈 수밖에.

여성호르몬의 영향이라고 한다지만, 뭐니 뭐니 해도 노화의 반증이고, 그걸 인정할 만한 나이가 되었기에, 50이라고 불리는 지천명을 전후하여 나타나는 증상이기도 하다.

갱년기가 되면 매일매일이 생각만큼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루의 흐름이 내 뜻대로는 절대로 흐르지 않으며, 부자연스러운 일들도 한 둘이 아닐 거며, 오전까지만 해도 좋았던 기분이 오후가 돼서부터 그 반대가 되기도 할 터이고. 그렇지만, 그런 모든 마음의 동요를 충분히 받아들일만한 어른다운 상태가 되었기에, 제 몸의 조건에 맞게 갱년기도 오는 것일 테지. 떼쓰고 분을 내기보단, 빠르게 인정하고, 그 미로 속 같을 갱년기의 수풀을 현명하게 잘 빠져나올 궁리를 좀 해 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앉아서 당하면서 우울증과 여타 합병증을 얻기 십상이다.

체력적으로도 자신이 없을 테니, 장거리 여행, 장시간 여행도 당연히 힘들어지겠지. 소소하게 사는 곳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 주를 이루겠지.


시간을 죽일 재미난 일을 꼭 찾아야 한다. 매일매일 반복해도 질리지 않고, 생산적인 일로 이어지는 소소함. 수양을 쌓듯이 혼자서도 해낼 수 있는 가벼운 일이었으면 좋겠다.

가드닝(텃밭이나 정원에 어떤 식물군을 조화롭게 심으면 좋을지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고민해 오던 일이다),

 핸드메이드 소품 제작(지긋하게 앉아서도 재미있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창작물 만들기), 편물 뜨기도 좋고, 뭔가 정해지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이 먹어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도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외국어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일본어가 내게는 가장 만만하다. 여행지로도 혼자 여행하기에 만만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의 문화가 딱히 좋아서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내 입장에서 편하고 좋은, 말 그대로 만만한 게 그 나라이고 그 언어라서 그렇다.

찾아가기 가깝고, 비교적 배우기와 말하기가 쉽고. 일본이 그렇고, 일본어가 내게는 그렇다. 그 외의 큰 의미는 없다.



아침 출근길에 문득 느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맞는 아침의 공기가 가져다주는 그 생경함! 그 생경함이 비로소 여행자의 느낌을 주고, 긴장감을 주는데, 또 그것이 싫지만은 않더라는 것!

여행자라면 응당, 머무는 곳이 다소 불편하고, 시설이 낯설고 주변의 사람들과 도시들이 나와의 사이에 경계 벽이 하나 있는 것처럼 철저하게 외지인으로서의 센서가 작동하게 된다. 아주 낮은 강도의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호기심과 설렘이 발동하는 긴장감이다.

나에게 여행은 결국 낯선 공기에 대한 갈망인 것이다. 노매드적인 DNA가 스멀스멀 밀려올 때쯤이면, 뭔가 낯선 공기의 주입이 절실해지는 때가 된 것이다. 늘 익숙한 일상, 매일의 반복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에서 느껴지는 불안함이랄까? 긴장 없는 날들이 주는 편안함에 겹쳐, 긴장감 없는 습관적인 불안함이 감지되는 순간이 되면, 어디든 낯선 공기를 찾아 떠나고 싶어 지는 맘이 드는 것이다.

딱 어디랄 것도 없고, 근사한 여행지가 아니어도, 그저 낯선 공기가 좀 필요해진다. 내게 여행은, 약간의 불편과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그런 대단치 않은 외도를 꾀하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아직은 내게 오지 않았다고 믿고 있는 갱년기에는, 되도록 멀리 나가보는 소소한 여행을 통해 느리게 걷고, 느리게 보면서 느리게 먹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리게 읽다가 또 느리게 끄적거려 보는 일상이 겹쳐지겠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우울한 생각일랑 얼씬도 못하게,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일들을 도모하면서, 그렇게 천천히 내 시간들을 쓰고 싶다.


책을 읽다 보면, 특히 작가의 일상을 접하게 되는 대목에서는 나의 삶과 일상과 가치관에 빗대어 비교해보게 되는데, 평소의 생활의 습관이 나와는 다르지만, 정말 응용해 보고 싶고, 나는 미처 가져보지 못한 발상에 대해 따라 해 보고 싶게도 만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깊고 넓게 볼 수 있는 입체감이 생기는 일인 것 같다. 사고영역이 넓어지는 이 거시적인 입체감은, 인생을 돌아보며 근사한 것을 계획할 수 있는 여유를 주기도 하고, 선뜻 실행에 옮기기 꺼려지는 일에도 태연하게 대처하게 되는 것 같다.

경제적, 심리적인 여유까지 생기니 뭘 한다고 해도 크게 두렵지 않고, 뭘 안 한다고 해도 크게 조바심이 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실수를 한다거나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가 돌아오더라도 무덤덤하게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해질 만한 나이인 것이다. 외부로부터 받는 크고 작은 자극들에도 둥글둥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충격 완화 조절장치가 내 몸에서 스스로 작동하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마음 한 구석에선 자정 작용을 하는 필터가 작동해서, 모진 말들을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게 해 줄지도 모른다. 체력과 젊음을 일정 부분 내주어야 하겠지만, 없던 능력들이 하나 둘 생길 터이니 손해 보는 인생은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도 시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멀리까지 개운하게 볼 수는 없어도, 가까이에 있는 활자에 더 집중할 수 있을 테고, 걷는 발치 아래로 주변의 작은 것들에게까지 눈길과 손길을 뻗칠 수 있을 테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마음의 위로가 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세 가지의 행복은, 첫째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셋째는 어떤 일에 대해 희망을 가지는 것이다. 보편적인 누구나가 이 세 가지에 해당되지 않을까? 

어떤 것이 됐든 일을 하고 있고, 누가 됐든 사랑하는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자신이 소망하는 일에 대해, 혹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희망을 품고 있으니, 칸트가 말한 행복은 거창한 것도 아니고, 지금 누구나가 실천하고 있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오만이다. 나이가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갱년기가 도래한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그 이후로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챙기며 느려지는 몸의 속도를 받아들여야지. 안달복달한다고 세월이 거꾸로 흐르지도 않을 테니.


애써 나를 위로해 볼 요량으로 장황하게 변명의 글을 늘어놨지만, 그래도 아직은 나이 든다는 것이 좀 버거운 일이다. 어른으로서의 책임은 차치하고라도, 스스로에게 좀 미안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뭐가? 왜?라는 질문은 그냥 좀 아껴두자. 때로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두루뭉술 뭉개버려도 그만인 그런 의문들도 한 둘은 있게 마련이니까. 그러니 그냥 그런 게 있다고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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