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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싱 Sep 08. 2021

네 번째 편지. 긴 터널 끝의 빛

희망의 끈을 잡고

며칠 전, 까마득히 잊고 있던 직장 후배에게서 갑작스레 연락이 왔어.


- 선배님, 잘 지내시죠? 저 YJ예요. 혹시 기억하세요?


마지막 퇴사한 직장. 하고도, 그 이전에 다니던 직장의 후배였지.

그러니까 그 친구와 난 십 년이 넘는 시간, 실로 오랜만에 톡이란 걸 주고받게 된 거야.  

짧게 다녔던 회사라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는 인연이었지만 유난히 예쁜 얼굴과 붙임성 있는 성격이었던 그녀는 금세 내 기억 속에 들어왔어.


- 어머, YJ씨. 기억하구 말구. 잘 지내?

- 네. 정말 오랜만이에요 선배님. 지금도 회사 다니세요?

- 어, 나 몇 달 전에 퇴사했어 ㅎㅎ YJ씨는? 여전히 oo에 다니고 있어?

- 저도 퇴사했어요.

- 오 퇴사를 축하해 ㅎㅎ

- 선배님, 혹시 아가들 쌍둥이예요?

- 어어, 맞아 쌍둥이.

- 저 사실, 결혼하고 아기도 낳았는데 쌍둥이예요...!


웃고 떠들며 일 년 남짓한 시간을 가까이 보내긴 했지만 서로의 대소사를 공유하며 살기엔 다소 애매했던 정도의 사이라 서로 어떻게 사는지는 소식을 몰랐. 갑자기 온 연락에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었는데 그 의문이 로소 해소되었지.

우리는 약 한 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눴고 내가 쌍둥이를 낳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어.

몇 번이 넘게 이모님이 그만둔 사연, 시엄마와 친정엄마가 번갈아 가며 최전방 지원을 해준 사연, 결국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사연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충들.

머리를 언제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만나서 속을 터놓고 싶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라 도저히 집 밖을 나설 수가 없다 이야기만으로도 그녀의 지금 심신상태가 어떠한지 90% 짐작이 갔을 정도니까.


- 그런데요, 선배. 그럼 저는 언제 좀 편해질 수 있어요...?


결국 YJ가 궁금한 대목은 바로 그 지점이었지.

순간 조금 망설여지더라. 이제 곧 나아져, 조금만 참아- 라고 용기를 북돋아줘야 할지, 쌍둥이 육아는 이 악물고 맘 단 먹어야 한다고 현실 조언을 해야 할지.


- 일단 백일의 기적을 기다려 보자.


나의 첫마디는 그거였어.

그랬어.

정말 육아 선배들의 말은 틀린 법이 없었지.

태어난 지 100일이 되니 짠하고 자명종이 울리듯 통잠을 자기 시작했던 그때를 난 지금도 기억해.

물론 하루 이틀 정도의 차이는 있고, 잘 나가다가 엎어지는 경우도 있겠지? ㅎㅎ

하지만 어쨌든 백일을 기점으로 아름다운 통잠의 세계로 빠져든다는 걸.

그럼 너는 못해도 새벽 수유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으니 말야.


- 그리고 두 번째는 '첫 번째 기관'에 보낼 때를 기약해.


사실 쌍둥이 어린이집 보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어. 두 자리 티오가 한꺼번에 나기란 흔한 일이 아니니까 말야.

그래서 난 과감히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았어. 양육자가 조금 고생하는 건 어쩔 수 없는데 보내 놓고 두 아이가 잘 있을까 걱정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라 생각했어. 여우의 신포도 같다고? ㅋㅋㅋ 틀린 이야기는 아닌데, 결국 티오가 나지 않아 보내기를 접고 난 이후에 다시 연락이 왔을 때는 내가 먼저 사양하기도 했다면 내 주관이 조금 설득력이 있을까? 만약 네가 하루라도 빨리 기관에 맡길 계획이라면 그래도 아이가 말을 하고 난 이후에 보내라고 조언해주고 싶어. 아이가 기관에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무슨 놀이를 했고 무엇을 먹었고 어떤 친구와 놀았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너에게 조금은 설명할 수 있는 때가 기관에 보내기 좋은 시기라고 나는 기준을 삼았어.

그래서 결국 나는 5세에 처음으로 내가 다니던 성당의 유치원으로 아이들을 보내기 시작했지.

결과적으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은 것을 나는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비로소 기관다운 기관에 아이를 안전히 맡겨놓고 못해도 낮시간의 반은 온전히 내 시간이 된다는 건 정말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기관에 보낼 때, 그리고 보내고 나서의 팁은 다음 편에 풀어보도록 할게.


쌍둥이로 태어난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극히 드물다는 연구결과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물론 그건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외로움'에 감정을 느낄 새가 거의 없어. 그건 유아, 아동 시절이 유독 그럴 수밖에 없는데, 워낙 '같이'로의 니즈가 적기 때문에 오히려 친구나 외부 관계에 대한 갈증을 너무 안 느껴서 문제라면 문제랄까.

오히려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유도를 해주기도 해.

한 아이에게만 볼일이 있을 때 그 틈을 타 아이가 좋아하는 곳에 데리고 가 준다거나, 맛집 데이트를 한다거나 하는 등 말이야. 사실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이 늘 분산된다고 느낄 수 있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 그런 이벤트를 가져주면 아이가 온전히 자신만의 존재를 더욱 느낄 수 있기에 꼭 필요한 이벤트라고도 할 수 있어.


평생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참으로 밝게 자라.

때로는 둘만의 경쟁에 사로잡히기도 하는데 이 점은 양육자가 잘 이끌어주고 활용해준다면 오히려 텐션을 줄 수도 있어서 학습이나 나아가야 할 무엇이 있을 때 도움이 되기도 해.

쌍둥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텐데 '놀아줘'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거.

그게 정말 쌍둥이 육아의 혜자야 ^^

지들이 어떻게든 놀거리를 찾아내고 알아서 해결하거든.

물론 그만큼 다툼이 있기도 하지만 그건 조금 어른이 컨트롤해주면 금세 해결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모든 일이 그렇듯 쌍둥이 육아도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야.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래도 '장점이 훨씬 많다'라고 단언해.

그러니 매사에 지레 겁먹지 말고 이 쌍둥이 선배 언니의 조언을 앞으로도 기대해주길 바라.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 안녕!



Photo by Snowca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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