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너무 쾅 닫지 마라
마음에도 틈이 필요하다
나는 늘 음식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래서인지 약국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알록달록한 영양제 병들을 볼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다. "자연스러운 게 최고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나였다.
한때는 주변의 권유로 비타민C를 구입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며칠 먹다 말고 서랍 깊숙이 처박아두곤 했다. 결국 유통기한이 지나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비타민C를 보며 나는 또 한 번 영양제를 구입하는데 돈을 쓰지 말아야겠다 결심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불쑥 눈 영양제를 주문해 달라고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당근을 열심히 먹으면 되잖아"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얼마 전 있었던 일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화창한 봄날, 나는 평소처럼 차를 몰고 있었다. 옆 차선에서 갑자기 한 차가 내 속도에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운전하면서 무언갈 잘못했나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여성 운전자를 대상으로 추석 물품을 판매한 사기 사건이 떠올랐다.
'뭐야, 이 사람?'
짜증이 났지만, 운전자가 손짓으로 창문을 내리라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냈다. 걱정반 무서움 반으로 창문을 열었다.
"뒤에 주유구가 열렸어요!"
사이드미러로 확인해 보니 정말 주유구 뚜껑이 열린 채, 바람에 날려 자동차 뒷문을 텅텅텅 쳤다. 다시 눈을 옆으로 돌렸다. 이 사실을 알려준 운전자는 자기의 역할을 다한냥, 이미 속도를 내어 눈앞에서 사라졌다. 얼른 갓길에 차를 세우고 뚜껑을 닫았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 사건이 떠오르자, 나는 새벽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혹시 남편은 내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C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남편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잘 챙겨줘야겠다.
얼른 일어나 더듬더듬 전화기를 찾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에는 아주 작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바로 내 손바닥 위 핸드폰이다. 쇼핑몰을 뒤졌다. 가장 리뷰가 많은 순으로 필터를 고친 후, 눈 영양제를 주문했다.
솔직히 말하면, 눈 영양제와 주유구 뚜껑 사건 사이에 어떤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차라리 오메가 영양제가 더 나은 건가? 눈에 좋은 거니 어찌 됐든 몸에도 좋은 거겠지.
우리의 삶은 때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주유구 뚜껑을 닫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작은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려주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지혜가 아닐까.
영양제를 등한시 한 내게 나보다 먼저 늙어가는 남편이 일깨워준 것. 영양제 한 알에 담긴 것은 단순한 영양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를 향한 관심이고, 사랑이며, 때로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작은 신호등 같은 것이다.
그래,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ps. 주유구 뚜껑이 열린 사실을 알려준 분께.
운전 중이라 미처 인사하지 못했는데, 이 글을 통해 누군지 모르지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