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의 일상은 중국드라마로 가득하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마치면 어김없이 드라마 앞에 앉아 푹 빠져있다. 제목은 의천도룡기다. 나도 중학생일 때 가족들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중국 드라마와 소설로 유명한 '의천도룡기'는 무협 소설의 거장 김용(金庸)이 쓴 작품 중 하나다. 이 소설은 1961년부터 1963년까지 홍콩의 신문에 연재되었고, 이후 책으로 출판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명나라 초기, 무림의 패권을 둘러싼 여러 문파 간의 갈등과 주인공 장무기의 성장 과정을 그린다. 의천검과 도룡도라는 두 개의 전설적인 무기를 둘러싼 비밀과 음모가 주요 스토리라인을 이루며, 각기 다른 개성과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얽히고설킨다. 이러한 복잡한 인물 관계와 스토리 전개는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인해 여러 차례 리메이크 된 작품이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이 의천도룡기 작가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작품의 뛰어난 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작가인 김용(金庸)의 명성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게 보여주었다.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팬을 보유한 작가" "이름 자체만으로 흥행 보증수표"라는 둥, 침 튀기듯 열심히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의 눈은 반짝였고, 목소리는 활기찼다. 난생처음 보는 남편의 모습이었다. 나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묘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마치 그가 말하는 뛰어난 김용(金庸) 작가가 바로 나인 것만 같았다.
내가 쓴 글에 대해 누군가 저렇게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도파민이 폭발하듯 즐거웠다. 만약 그렇다면, 이거 꽤 행복한 일이잖아. 그 순간만큼 나는 김용(金庸) 작가였다. 그러나 그것은 달콤한 착각이다.
“ 어머나, 족발 나올 시간이다. ”
얼른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더 듣고 있으면 , 힘들어질게 뻔하니까. 만약 복권에 당첨된다면, 투자한 기업이 1,000% 수익률을 준다면, 이런 상상은 참으로 즐겁다. 아주 구체적으로 돈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노트에 하나씩 적어가는 과정만으로도 행복하다.
하지만 타인이 부러워 내가 ‘그 사람’이라면, 이런 상상은 전혀 즐겁지 않다. 분명 나는 ‘나’ 자체로 충분히 매력 있는 사람인데,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어떠한 특별한 능력이 부러워 ‘그’와 ‘나’를 동일시하는 상상은 부질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울해질지도 모른다는 리스크가 있기에 사람과 동일시하는 상상은 해선 안된다.
시간이 지나고 그 순간을 다시 돌이켜 보았다. 남편의 열정적인 이야기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내가 글을 못쓰니까 '돌려 말하는 건가?' 의심의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던 그 순간, 어쩌면 그것은 '응원'이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작품에 대해 저렇게 진심으로 감동받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나와 나누고 싶어 했다는 것. 좋은 작품이 주는 감동과 그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 그것은 응원이었다.
글쓰기란 이처럼 다양한 감정과 해석이 공존하는 여정이다. 때로는 감성으로 가득 찬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의 진심 어린 감상에서 응원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가 주는 매력이자 어려움이다. 또한 이것이 내가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은 이유다.
나는 오늘도
이 복잡한 감정들을
안고 키보드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