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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콤이 Oct 30. 2024

타이레놀 두 알도 막지 못한 사랑


데굴데굴 데구르르르


     

이른 새벽, 4시가 살짝 넘은 시간이었다. 숨을 내뱉는 게 힘들 정도로 심한 복통이 왔다.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배를 움켜잡고, 거실과 방바닥을 이리저리 굴렀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 남편은 서둘러 타이레놀을 까 주었다.     


무서웠다. 통증이 무서웠고, 미래가 무서웠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더더욱 무서웠다. 어이없게도 불안과 공포 속에서, 나는 글쓰기 소재가 떠올랐다.      


잠들기 전, 남편은 나의 배를 만지고 싶어 했다. 머리가 닿자마자 코부터 곯아대는 남자가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하려 한다. 왜 그러냐 하면서 손을 탁 쳤지만, 다 큰 남자가 칭얼대는 소리에 못 이기는 척 가만있었다. 남편은 내 배에 손을 살포시 올려놓고 잠이 들었다. 



“ 아파. 아파. 너무 아파 ”     



바닥에 쪼그려 엎드리니 몸에 진동이 오듯, 위아래로 떨림이 왔다.  흐느끼듯 아프다고 말하면서, 잠들기 전 어떤 상황이었는지가 떠올랐다. 그렇게 아프면서, 그 상황을 이렇게 저렇게 대입해 떠올렸다.         


 

남편을, 그로 바꾸고...

남편의 손을, 예언자의 신호로...


         

아픔에 일그러진 표정이었지만, 상황을 재해석해서 글로 써본다면 ‘재밌겠네’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와중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순간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랬다. 나는 어려서부터 상상력이 꽤나 풍부했다. 복권이 당첨되면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 해결을 위해 인식을 어떻게 전환해야 할지, 상상을 아주 구체적으로 기록해 둔 적이 있다. 기록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엉뚱하기 그지없다. 상상의 종류는 개인적인 거에서부터 공적인 거까지 아주 다양하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을 멈추라 한다. 글쓰기만이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임에도 그만두라 명령한다. 그건 마치 글쓰기 취미가 제 아무리 매력적일지라도,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내 비록 인터넷 나부랭이에 글쪼가리 쓰지만 (양귀자, 김은희, 이윤주 작가님들이 보면 코웃음 칠라) 내 사례를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 적어 보겠다.     



글쓰기는 장시간 지속될 경우 여러 가지 신체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세와 관련된 문제들이다. 컴퓨터나 노트북 앞에서 오랫동안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있다 보면 거북목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 목과 어깨의 통증도 동반한다. 또한 장시간 모니터를 응시하니 눈의 피로도를 불러온다. 그러니 안구건조증 원인이 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키보드를 많이 사용하는 글쓰기 특성상 손목터널증후군의 위험도 존재한다. 여기에 운동 부족까지 더해지면 전반적인 체력 저하와 비만의 위험도 증가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는 창작의 즐거움을 빼앗아간다. 즐거움이 사라지면, 내 글을 향한 타인의 반응에 지나치게 민감해질 수 있다. 때로는 악의적인 댓글이나 비판에 상처받기도 한다. 이런 부정적 감정이 지속적이면 번아웃이 수시로 온다.     


      



나는 최근 의도치 않게 사회적 고립을 경험한 적이 있다. 시작은 이렇다. 글쓰기가 취미가 되면서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되어 그냥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표정, 그들이 나누는 대화, 거리의 풍경, 계절의 변화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작은 것 하나하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난생처음 듣는 문장이나, 재미난 표현 등은 글쓰기에 활용하려고 속으로 외우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자, 취미와 직업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어느 순간, 인터넷 댓글 때문에 상처받은 친구처럼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너무 집중한 탓일까.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마치 나를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했나.



나만의 마법 문장을 가슴속에 박아 두었다. 아리노마마! (ありのまま)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나를 연상하게 되는 것은 자신을 그 대화의 주제나 상황과 동일시하기 때문일 수 있다. 이는 개인의 경험, 불안감, 자존감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성격과도 연관이 있다. 



이들은 주변의 감정이나 분위기를 잘 관찰할 수 있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화 내용이 자신의 외모 · 성격 · 행동 등과 관련이 있다고 느낄 때 더욱 쉽게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심리적 반응이라 생각한다.     



「동일시 감옥」에 갇히지 않으려면, 눈앞의 상황을, 현상을, 대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돼버려서 혼란이 올 것 같단 생각이 들면, 내 안의 마법 단어가 별처럼 튀어나와 어김없이 나를 지켜준다.   


   

아리노마마
있는 그대로


     


이거 한방이면, 「동일시 감옥」 프레임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다. 이런 방법도 있다. 인터뷰 자리에서, 상대의 말이 나의 뇌세포를 건드린다면, 그 말을 나지막이 그대로 따라 한다.         


  

“ 밉살맞은 놈 ”   


  

“ 밉살...맞은 놈 ”   


       

“ 나약하구나 ”     



“ 나약하구...나 ”     


     

“ 판도를 바꾸겠다 ”  


   

“ 판도를 바꾸겠다... ”       


   

상대의 말을 따라 한다 해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멋진 표현 같아서 나중에 글 쓸 때 활용하려고 따라 했다 하면, 대부분 그냥 넘어간다. 



글쓰기는 분명 아름답고 가치 있는 취미 활동이다. 하지만 모든 좋은 것이 그렇듯,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글쓰기가 가진 잠재적 위험성을 인식하고 이를 적절히 관리할 때, 우리는 이 의미 있는 취미를 오래도록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건강한 글쓰기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나는 이렇게 한다. 요즘 잠시 쉬고 있지만, 운동은 필수다. 글쓰기는 정적인 활동이므로, 헬스 · 요가 · 걷기 등 적절한 운동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특히 바른 자세를 수시로 체크하고 유지하려 노력한다.      



시간 관리도 중요하다. 글쓰기에 할애할 시간을 미리 정해두고, 다른 활동이나 사회적 관계에도 충분한 시간을 배정해야 한다. 취미는 어디까지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보조적인 역할이라는 것을 명심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거! 내가 정말 이 일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자신을 지켜줄 마법 문장 하나! 그 어떤 거라도.  


  

주식은 다른 사람의 슬픔을 먹고사는 거라면, 예술은 작가의 고통과 감정을 먹고 사는 거니.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 그냥 외치면 된다.  나만의 마법 단어.      


   

할렐루야
아리노마마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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