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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돌이 Apr 15. 2021

난임 병원 첫 방문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조조 영화를 예매하듯이, 일찍 일정을 시작하면 하루를 좀 더 길게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며 토요일 가장 이른 시간으로 난임 병원을 예약해 놨다. 혹시나 대학 병원처럼 예약 문의를 하고도 여러 날을 기다려야 진료를 볼 수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예약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바쁜 의사 선생님을 지정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예약 문의를 드리자마자 원하는 선생님이 있는지 물어보셔서 사실 당황했다. 맛집이나 미용실처럼 병원 의사 선생님도 미리 서칭을 해서 찾아가야 하는 건가... 싶다가도, 워낙 간절히 임신을 원하는 분들이 많으니, 그런 문화가 생겼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검색을 해봐도 잘 모르겠다고 예약 담당자께 말씀드리고, 내가 원하는 날에 일정이 되는 분들 중 내 케이스(다낭성, 배란)가 선생님 소개에 적혀있는 의사 선생님으로 예약을 하기로 했다. 


첫 방문이어서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다. 아침에 집 앞 전철역에서 전철을 타고 내릴 때까지는 날씨도 좋고 아주 산뜻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전철역 바로 앞에 있는 병원 문에 들어서자..... 마치 다른 요일, 다른 시간인 듯 병원 안은 부산하고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우리는 첫 방문한 사람들 답게 어리바리하게 입장 체크를 하고, 뭔가 시키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따라 하기 바빴다. 먼저 접수를 하고, 상담 순서를 기다려 초진 상담을 받았다. 미리 작성해간 초진 상담 양식 덕분에 시간이 약간 단축될 수 있었다. 상담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진료실 앞까지 데려다주시고 앱 사용 방법도 설명해 주셨다.


진료실 앞에 가자 이미 내 앞에 10명 이상이 대기 중이었다. 하긴.. 토요일이니 방문 환자가 많겠지 싶다가도 막상 기다림이 길어지니 참 마음이 씁쓸했다. 겨우 들어간 진료실에서 사진으로만 뵈었던(?)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은 환자가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성격이 빨리빨리인 스타일이신지 말도 맘도 급해 보이셨다. 덩달아 나도 급박하게 그동안의 내 행적과 내 상태를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곧 나에게 얼른 초음파 보고 오라고 지시하셨다.


뭐가 뭔지 모르게 지나간 진료였다. 그리고 나는 얌전히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대로 수납하고 초음파 대기하고 초음파를 보고 다시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초음파 대기도 상당했다. 초음파실 앞에는 보호자는 다른 곳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도 있었다. 대기 장소가 조금 협소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남편은 검사를 받는 일이 아닌 이상 졸졸 쫓아다니는 일밖에 할 게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카페에 가 있으라고 하고 나만 병원 일을 보기로 했다. 


또 간호사 선생님께서 친절히 초음파 대기실의 룰을 설명해주셨고, 나는 고분고분하게 지시를 따라 초음파를 받게 되었다. 다니던 산부인과 초음파실보다 어둑하고, 다리를 높게 들어 올리지 않아서 그런지 초음파를 볼 때 조금 덜 불편한 느낌이었다. 바로 내 눈 앞에 초음파를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있어서 초음파 선생님이 이리저리 관찰하시는 영상을 함께 보았다. 내 오른쪽 난소에는 다낭성이기 때문에 올망졸망한 난포들이 있었고 그중 조금 커 보이는 애가 하나 있었다. 재 보니 1.2센티 정도 되었다. 얘를 관찰하시면서 선생님께서 과배란 유도를 했는지 물어보셔서, 클로미펜을 먹었는데 잘 안 자랐다고 말씀드렸다. 


초음파실을 나와서는 바로 다시 진료 대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안 크던 난포 하나가 그래도 1센티라도 넘게 자란 게 그래도 맘이 조금 좋았다. 이번 사이클에 뭔가를 더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선생님께서도 자란 게 있긴 하다며, 주사로 조금 더 키워보고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을 수 있다면 진행하고, 주사로도 더 커지지 않으면 생리 유도를 해서 다음 주기로 넘어가자고 하셨다. 시원시원하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나도 자가주사를 놓게 되는구나... 맨날 글로만 보던 배 주사!! 수납을 하고 주사실에서 간호사 선생님의 시범을 잘 보았다. 집에 가서 이틀간 혼자 맞을 생각을 하니 너무 떨렸다. 






이렇게 주사까지 맞고 병원을 나선 게 열한 시 반이었다. 나와 남편의 토요일 오전 두 시간 반이 다 흘러가 버렸다. 남편이 있는 카페로 가는 길이 어찌나 날이 좋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지. 이런 날 어둑한 실내에서 지난한 기다림으로 시간을 다 보내버린 게 갑자기 너무 울적했다. 그리고 다음 주 수요일 아침 진료를 보고 회사에 늦지는 않을지, 앞으로 몇 번이나 이렇게 병원을 오가면서 지내야 할지 갑자기 막막해졌다. 그리고 하루 만에 십만 원이 훌쩍 넘게 나온 병원비까지..... 왜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소중한 시간과 체력과 돈을 들여야 하고, 회사에서도 눈치를 보게 되어야 하는지...... 내가 선택한 것이면서 모든 것에 억울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간단히 진료 내용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주고 사소한 것들에 짜증을 부리면서 카페를 나왔다. 남편은 좋지 않은 내 상태를 바로 알아차리고 왜 그러느냐고, 안 좋은 얘기를 들었느냐고 상냥하게 물어봐줬지만 나는 그냥 짜증만 부릴 뿐이었다. 사실 비관적인 얘기를 들은 것도 없고, 난임 병원에 와서 새롭게 시작해보자고 한 것도 나이니, 갑자기 짜증이 나고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게 내가 생각해도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주사를 맞을 때만 해도 아 그래도 이번에 뭔가 도전해볼 수 있겠다 싶어서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걸어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왜 그렇게 감정이 가라앉다 못해 낭떠러지 아래로 곤두박질친 걸까. 


혼자 그렇게 불퉁하게 걸어가다 보니 점점 눈물이 고였다. 도대체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표정까지 일그러질 정도로 눈물이 눈을 비집고 나왔다. 남편은 왜 우냐며, 다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아까 병원에 사람 많지 않았냐면서 달래주었다. 정말 나도 내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먹고 싶은 것을 사준다는 남편의 말에, 빵을 한 아름 사들고 집으로 왔다. 점심을 먹고 나니 왜 이렇게 졸음이 쏟아지는지, 소파에 누워 거의 서너 시간은 푹 잔 것 같다. 처음이라 긴장을 했던 것인지, 주사 때문인 건지, 혼곤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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