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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Feb 24. 2022

<도시 악어>  글라인 · 이화진 글  /  루리 그림

책이 있는 공간


『도시 악어』를 그리면서 「Creep」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가끔, 답 없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며 괴롭힐 때가 있잖아요. '어울리지도 않는 이곳에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같은 질문이요. 정답을, 어울리는 곳을 찾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질문도 정답도 다 잊게 되는 순간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루리







이따금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쓸 때면, 정리되지 않은 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감정들로 인해 글이 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노트북 앞에 한참을 앉아서 모니터를 노려봐도 손가락은 꼼지락만 해대며 우왕좌왕 허둥대곤 합니다.

'도시 악어'도 그런 책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또 그림이 주는 힘을 만난 것 같습니다. 그림 하나하나가 감정의 우물에서 찰랑찰랑 두레박을 퍼올리게 합니다. 여운은 지금까지도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원치 않게 도시에 살게 된 악어가 있습니다. 인간들과 달라서 항상 일정한 간격이 있습니다. 어울리고 싶어서 이래저래 노력하지만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악어를 무서워합니다. 사람들 속에 있고 싶지만 그어진 선은 철옹성 같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악어를 진열된 상품 보듯이 합니다.

토마토를 좋아하고 햇볕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친해지기가 힘듭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무섭게만 보일 뿐이니까요. 외로움은 깊어지고 자괴감도 생깁니다.

악어는 그런 현실을 가슴속에 품은 채 강앞에서 고민에 빠져있다가 실수로 물에 빠지게 됩니다. 물을 싫어한다고 여태껏 믿고 있던 악어는 비로소 자신이 악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물과 하나가 됩니다.



 


그림책 '도시 악어'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책 속의 '악어'이기도 하고 때로는 책 속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을 가지고 대하기도 하고 그 편견을 받는 쪽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닌데 우리는 종종 둘을 헷갈려 합니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니까요.

다름을 인정하면 많은 것들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진짜 악어가 우리 집 옆에 살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악어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문을 걸어 잠그겠지요. 하지만 악어가 먼저 손을 내민다면, 그의 말을 들어줄 수는 있을 겁니다. 그렇게 빗장이 열리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역시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요.

다들 열심히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그들 밖에서 겉돌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함께'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맞지 않는 옷이지만 부단히 몸을 옷에 맞추어보려고 노력합니다. 벗어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쉽게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습니다. 혼자여서 외로운 것보다 여럿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더 아픕니다. 벗어나고 싶어집니다. 벗어나면 자유를 얻을까요.

딱 맞는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그냥 옷에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도시 악어가 물을 만난 것처럼 나에게 어울리는 세상, 내가 비로소 나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물속에서 평화로운 자세로 누워 '나는 내 꼬리가 부끄럽지 않아'라고 말하던 악어 모습이 떠오릅니다.

'도시 악어'의 그림들은 오래 바라보게 만듭니다. 악어의 감정들이 그림마다 비처럼 후드득 떨어집니다. 내 마음도 덕지덕지 따라갑니다. 그냥 느껴집니다. 지독한 외로움, 슬픔, 아픔, 눈물 따위들이 마음을 눅눅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은 흐뭇했습니다. 나도, 악어라서 그런가 봅니다.

이 그림책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읽으면 좋을듯합니다. 책, 컬러링북, 미니아트 포스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컬러링북은 자신만의 느낌대로 색을 채워나가면 즐거울 것 같습니다.

그림 작가 '루리'님의 말에서 언급한 라디오헤드의 'Creep'을 여러 번 오랜만에 다시 들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저도 알고 있었으나 가사 내용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아마 가사를 잘 알고 있었다면 저도 이 노래를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로 발걸음 해보시면 되겠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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