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부터 전주 여행하면서 계속 걸었더니 다리가 너무 아팠다. 벚꽃이 강변을 따라 피어있어서 정신없이 구경하면서 걷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었다. 게다가 남자 친구 앤디의 동료가 단체 카톡방에 지금 이마트에서 치즈랑 다른 제품들이 반값 할인한다고 남겨놓은 걸 보고 반값 올리브 오일, 채소, 체다와 고르곤졸라를 잔뜩 사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친구가 여섯 시 반에 파티한다고 하는데, 갈래?” 카톡창에 다른 친구들의 채팅이 올라오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메뉴가 뭔데?” 다리도 너무 아프고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흥미로운 요리가 있으면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한 질문이었다.
“생선구이와 와인이라는데. 가면 꽤 재미있을 거야. 너도 간다고 할게!”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알고 있어?” 앤디가 한 번도 이에 관해서 얘기한 적이 없어서 좀 의아했다.
“당연히 알고 있지.” 그는 이미 나도 간다고 얘기한 모양이었다. 답변들을 나에게 살짝 보여줬는데, ‘드디어 한을 보는 거야?’라며 기뻐하는 듯 보였다.
“뭐라고 했는데? 날 어떻게 알아?” 우린 만난 지 2년이나 됐지만, 서로의 SNS에 함께 찍은 사진도 올리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했다고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때다 싶어 질문했다.
“우리 이번 달에 이탈리아로 여행 가기로 했잖아? 로마 이야기하다가 네 이야기까지 나온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그는 핸드폰을 덮어두고 계속 말을 이었다. “타미가 아일랜드 가는데 나도 데려가서 가족들에게 소개해주는 거냐고 물었는데, 그건 좀 아니라고 했어. 한은 조용하고 개인적인 공간을 필요로 하는 얜데, 우리 가족은 아마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 거라고 했지.” 하며 큭큭거리며 웃었다.
나는 예전에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나이가 70세이신 데다 보수적인 편이라 충격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아직은 나를 소개해 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앤디가 평생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해주지 않는다면, 그냥 이대로 결혼하지 않고 평생 연인으로 살 수 있을까? 예전 같으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 없이 할머니 손에 자랐고 아빠는 재혼에 성공해 자식을 둘 낳고 잘 살았다. 그래서인지 나만의 가족을 따로 만들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서른이 된 지금은 글쎄, 결혼이 필요할까 싶다. 앤디와 연인 사이로 잘 지내고 있는데, 결혼을 한다고 이 관계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앤디는 매년 여름과 겨울에 한 달간 아일랜드의 가족 곁으로 떠난다. 그렇다면 일 년에 10개월은 함께 생활하니까 충분하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씁쓸한 마음이 있다.
“혹시 내가 안 가도 넌 갈 거지?” 나는 그가 날 두고 혼자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질문했다. 나는 어쩐지 그의 사회생활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파티에 보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