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작업실
2017. 5. 16
승준이는 상상력도 풍부하고 아는 것도 많은 아이입니다. 샘에게 많은 과학지식을 알려주었거든요. 물론 다른 아이들에게도 알려주었습니다. 과학지식을 많이 이야기해줘서 꿈이 과학자일 거라고 예상하고 승준이의 꿈을 물었더니, 과학자가 아니라 종합예술인이었다네요! 요리사부터 인테리어 디자이너, 가구 제작자 등 모두 하고 싶다고 해요. 아이들의 꿈 이야기를 듣는 건 늘 즐겁습니다. 오늘은 승준이가 이문238에서는 작품을 어디에나 붙일 수 있어서 좋다! 고 했어요. 지난번에 고깃집 만들 때 제가 말을 걸었었는데 그때는 부끄러워하면서 작업을 가리고 안 보여줬었거든요. 그런데 작품을 붙이고 전시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는 거 보면, 누군가에게 작업을 보여주는 게 내심 좋았던 모양이에요. 그리고 그게 아이들이 작업하는 데 목표 의식이나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2017. 5. 17
승준이가 갑자기 고깃집 작업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과 고깃집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줬어요. 뭔가 작업에 대한 비화 같은 느낌이어서 '승준이만의 작업노트'라는 이름으로 승준이가 했던 말을 스스로 기록해보도록 했어요. 한참 전에 만든 고깃집을 가끔씩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 고깃집에 애정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다음 작업을 붕어빵 가게라고 합니다!!
2017. 5. 19
오늘은 붕어빵 가게 다음으로 무엇을 만들면 좋을지 샘에게 물어봤어요. 언하샘 말처럼 정말로 시리즈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봅니다.
2017. 5. 23
수수깡과 종이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떡볶이 포장마차를 만들었습니다. 수수깡을 조각내어 만든 떡꼬치는 디테일이 최고였습니다. 실제와 같은 모형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3번째 시리즈까지 만든 것을 보니, 승준이의 다음 시리즈가 또 있을 것만 같습니다. 승준이의 작업은 항상 훌륭한데, 작업 뒷정리가 미흡해서 아쉬워요.
2017. 5. 29
3층짜리 상가의 1층인 카페를 만들었어요. 오늘은 카페를 만들고 다른 작업들도 많이 했어요. 승준이는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할 때가 많은데, 이유를 물어보니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른 걸 한다고 해요.
2017. 7. 7
승준이는 오늘 푸드피아 2차 가게를 만들려고 계획했어요. 트럭처럼 움직이는 푸드트럭이고 이름은 '리얼 멕시코’에요. 오늘 오자마자 푸드피아를 만들려고 했지만, 같이 가져온 자석 큐브만 열심히 가지고 놀았어요. 그리고는 정우랑 함께 팽이장을 만들고 팽이 놀이를 했어요. 큰 종이 모서리를 조금 접어 올리고 나무 막대기로 여러 가지 장애물을 놓은 팽이장에서 팽이놀이를 했어요. 푸드트럭은 다음에 만들기로 했어요.
2017. 7. 26
승준이는 푸드피아 작업을 했어요. 승준이는 요즘 매번 다른 작업을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푸드피아 작업은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 같아요. 오늘 만든 작업을 포함하면 푸드피아에 쓰이는 음식 재료에 관한 작업을 4개 했어요. 저번에 하나의 작업을 집중적으로 하지 못한다고 말해주었는데 하루에 여러 가지 작업을 함께하면서 꾸준히 푸드피아를 할 수 있도록 승준이 나름대로 작업 스타일을 찾은 것 같아요.
2017. 10. 26
승준이는 자기 작업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해요. 단순히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만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걸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쌓인 작업을 정리하면서, 승준이 작업만 모아두었는데 오늘 승준이가 자기 작업이 어디에 있는지 찾았어요. 그래서 모아둔 상자를 보여줬는데, 치킨집이 없어졌다면서 속상해했어요. 승준이에게 모든 작업을 다 모아둘 순 없고, 그래도 승준이 작업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만큼 모아둔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속상한 마음이 커서 결국 눈물을 흘렸어요. 다행히 승준이 작업을 찍어둔 사진이 있어서, 그걸 뽑아주는 것으로 일단은 마무리가 되었는데 끝이 개운치 않네요.
2017. 11. 1
승준이는 다시 진열대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어요. 유리로 막혀있어서 딱 자기 작업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대요.
2017. 11. 13
승준이는 오늘 도구정거장을 이용하면서, 이문238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그때는 재료도 별로 없고, 무엇보다 도구가 없어서 튼튼한 구조를 만들기 힘들었대요. 승준이가 작업실에서 제일 처음 한 작업인 고깃집은 무얼 만들면 좋을지 몰라서 한 번 포장마차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에서 만들었는데, 그게 인스타그램에 올라가서 무척 뿌듯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어요. 승준이의 작업이 작업실의 변화와 함께 성장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2018. 5. 3
승준이가 작업실에 다시 나타난 이후로 작업 수준이 좀 더 높아진 걸 느껴요. 오늘도 예전에 만든 고깃집을 업그레이드하고 싶다면서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어요. 사진 속에서 아기 같던 승준이가 일 년 사이에 많이 커서 신기했어요. 상자를 찾으면서 구체적인 수치(29*30cm)까지 이야기하길래, 그렇게 딱 맞는 것을 찾기는 어려우니 직접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어요. 골판지는 벽으로 쓰기에는 너무 흐물흐물하다고 해서, 오랫동안 묵혀둔 우드락 보드를 꺼내 주었어요. 이 정도면 될 것 같다면서 도면을 그리고 잘랐는데, 직각을 맞추어 사각형을 그리는 게 쉽지 않아 보여 삼각자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어요. 아직 구체적인 형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완성된 결과물이 궁금해져요.
승준이는 자기만의 음식 가게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고기, 붕어빵, 떡볶이, 치킨, 멕시칸 요리 등등. 승준이의 창업 아이템은 무궁무진합니다. 우선은 아이템을 하나하나 미니어처로 만들어보기 시작합니다. 튼튼한 구조의 가게, 그 안에 사람들이 편안히 앉을 수 있는 가구, 그리고 가게의 정체성을 담당하는 근사한 요리까지. 가게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이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날카로운 눈썰미. 가게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쑥스럽기도 하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승준이는 자신의 문제를 깨닫습니다.
승준이의 머릿속 수많은 창업 아이템을 하나하나 만들어보려면, 그것만 해도 바쁜데, 고무줄 총, 팽이, 자석 큐브, 재미있는 게 너무 많습니다. 작업을 못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나는 집중을 잘 못 하는 스타일이구나.’하고 스스로에 대해 알아갑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집중을 잘 못 한다는 것을 다르게 말하면,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일부터는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해보기로 합니다.
감히,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자기만의 꿈을 위해 하루하루를 작업으로 채워가고, 그 안에서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또 해결책을 찾아갑니다. 가끔, 아니 자주 아이들에게 배웁니다. 오늘도 퇴근하고 '작업해야지...' 생각만 하고 마는 나를 되돌아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곁에서 기다리고 응원하는 것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아이들의 작업실을 운영하며 기록한 5년 동안의 관찰일지. 사소하고도 소중한 우리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여러분과 나누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