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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양지은 Jul 16. 2023

우리가 착한 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도영과 지은의 밤새운 대화 1

밤새운 대화


할머니 댁 안방에는 보일러를 너무 세게 틀어 동그랗게 타버린 자국이 남아있는 노란색 장판이 깔려있었다. 어렸을 적 우리는 그 뜨거운 장판 위에 언제 빨았는지 모를 이불을 여러 겹 깔고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다. 힘들었던 가정사가 대부분이었지만 즐거웠다.


그 시절의 우리처럼, 양도영과 양지은은 다시 밤샘 수다를 떨어보려고 한다. 우리의 깊숙한 마음들을 때로는 실없는 이야기들을 당신이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괜찮다면 같이 떠들어주기를.


매 챕터가 끝날 때마다 밤새운 대화가 연재됩니다.






도영


그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참 착한 아이였다는 생각이 들었어. 적어도 착한 아이이고자 했다는 생각.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난 그게 엄마를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 같아.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말이 떠오르더라.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가토 다이조라는 일본학자가 『착한 아이의 비극』이라는 책에서 만든 신조어래. 제목이 씁쓸하다. 이 콤플렉스는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다는데, 그땐 몰랐지만 맞는 말 같아.



지은


분명 시작은 그러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 나 없이는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기 힘든 엄마와 아빠를 보며, 불안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겠지.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던 것 같아. 그리고 가엾은 엄마를 지켜줄 수 있는 딸이 되고 싶었어.


아주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어. 어린 나이었음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엄마와 아빠가 가족의 형태를 져버린 후 당면할 고난을 피하고자 착한 아이 행세에 더 몰입하지 않았나 해. 그래서인지 엄마와 아빠가 갈라선 이후, 나는 착한 아이 행세를 점차 그만두게 되었었어.



도영


그 어린 나이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피하려 노력했던 네가 안쓰러워. 닥쳐올 어려움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을 텐데도 그렇게 노력했다는 걸 생각하면, 다시 한번 부모의 불화는 자식에게 생존의 문제라는 걸 깨달아.


부모의 갈등과 이혼에서 경제적인 이유는 정말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아. 나는 늘 엄마와 아빠가 더 빨리 이혼했었더라면 모두가 더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이혼하지 않고 참았던 시간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어.


엄마의 그 말이 어렸을 때는 정말 듣기 싫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한편으로 인정하게 되더라. 경제적으로 더 힘들었다면 내 삶엔 분명 다른 종류의 고통이 더해졌을 테니까. 돈이 의미하는 것들을 점점 알게 되면서, 엄마의 말과 선택을 이해하게 될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어. 그 말은 결국 엄마와 아빠가 빠르게 갈라서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경제적 이득을 보았다는 뜻이니까. 엄마의 불행한 인생을 발판 삼아서 말이야. 의도치 않게 엄마의 말을 체감하게 될 때면 돈이라는 가치로 엄마의 불행을 납득 가능한 선택으로 만들고 이해해버리는 내 자신이 불쾌하게 느껴졌었어.


웃기지. 부모의 말은 자식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약의 선택지를 상상하게 하고 감정적 상처와 경제적 손해를 저울질하게 만들어. 그리고 그 저울질에 자식은 또 한 번 마음을 다치게 돼. 그곳에 승자는 없는데도.



지은


나는 언니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몰랐어. ‘이모와 이모부가 더 빨리 이혼했었더라면’이라 상상하는 언니의 속내는 처음 들어본 것 같다.


굉장히 의외이지만 언니의 마음이 어떤 것일지 이해돼. 나 역시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몇 년간, 매몰차지 못한 엄마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까. 긴 시간 아빠를 책임지며 허송세월한 엄마를 탓하고 싶었지만, 부모의 책임감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기에.


어린 나이임에도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아이에게 흔히들 ‘철이 일찍 들었다’라는 표현을 하곤 하잖아. 나 역시 부모로 인해 경제적인 고민을 일찌감치 했던 아이였기에 철이 일찍 들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 하지만 철이 일찍 들어 미래의 선택지를 경제로 환산해 버리는 내 사고 방식이 싫기도 했어. 자립할 수 없기에 부모에게 어쩔 수 없이 매달리는 내가 역겨웠달까.


그런 나를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착한 아이로 남고 싶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생존 본능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 한 편씩 올라옵니다. 



지은의 편지 4: 불행은 고여있다 못해 구정물이 되어 읽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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